제주4·3연구소, 지난 27일 증언본풀이마당 개최
예비검속 광풍 희생자 유족 정세민 등 2명 증언
응어리진 속을 말로써 풀어 4·3의 진실을 전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자리가 열렸다.
제주4·3연구소는 오늘(27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4·3, 이산과 재회’를 주제로 제주4·3 72주년 및 한국전쟁 70주년 기념 증언본풀이 마당을 개최했다.
올해로 19번째를 맞는 이번 본풀이마당에서는 예비검속 광풍에 희생된 사람들의 유족인 정세민, 고영자씨가 나서 사연을 풀었다.
정세민씨(76·서귀동 거주·남원 신례 출신)는 4·3으로 부모와 조부모를 모두 잃고 홀로 남겨졌다. 가족을 가슴에 묻고 홀로 살아오다 지난해 예비검속희생자인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
정씨는 이날 “동짓달 열이틀날(양령 12월 12일)을 잊지 못한다. 새벽인지 초저녁인지 토벌대를 피해 어머니가 다섯 살 배기 나를 업고 도망가다 창에 찔려 돌아가셨다”며 “누구 본 사람이 없으니 증언해 줄 사람도 없었다. ‘외갓집 가서 살아라’는 마지막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는 살면서 일이 잘 안 풀리면 4·3을 탓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며 “내가 슬프면 집안이 무너질까봐 오기로, 인내로 그저 묵묵히 강하게만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고영자씨(78·금악리 거주·대정 무릉 출신)는 어릴 적 아버지를 예비검속으로 잃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지난해 유전자 감식을 통해 정뜨르비행장에 묻혀 있던 아버지와 재회했다.
고씨는 “아버지는 시국이 조용해졌을 때 할머니가 계신 고향 모슬포로 갔다가 순경들이 턱 잡아가 버렸다더라”며 “할머니가 바지저고리 한 벌을 해서 이 옷이라도 입혀 달라 해도 거절당해 옷도 못 주고 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게 한이었나 보더라. 30년 전쯤 아버지 시신도 못 찾고 해서 언니가 굿을 하려고 날을 받았는데 생전 안 나타나던 아버지가 꿈에서 ‘바지저고리 좀 해도라’하시더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희생자유족 증언 외에도 제주민예총 소속의 최상돈 가수의 ‘애기동백꽃의 노래’ ‘이어도연유’ 등 공연과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의 4·3을 담은 시 ‘동백의 전언-행방불명인 묘역에서’ 낭송이 진행됐다.
제주4·3연구소 관계자는 “증언본풀이마당은 4·3 체험자들이 겪은 이야기를 풀어 4·3의 진실을 후세대에 알리고 아픔을 공감하는 자리”라며 “동시에 당사자들의 마음속에 쌓여온 기억들을 풀어냄으로써 스스로를 치유하는 트라우마 해소의 마당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편 본래 예정된 이순희씨(87·하모리 거주·대정 하모 출신)는 며칠 전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돼 이날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 이순희씨는 예비검속으로 어머니를 잃었으나, 다행히 학살터에서 시신을 수습해 현재 백조일손지지 묘역에 유해를 모셨다. 김수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