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입춘

농경문화 기반 절기상 '새로운 해' 여는 의미
평화로움·풍요·평안 기원하는 세시풍속 풍성
'어려운 이웃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도 있어

봄이 온다. 새삼스레 봄 타령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올해는 부득부득 봄이 온다고 외쳐본다. 다음 달 3일은 24절기의 시작인 입춘(立春)이다. 봄이 선다. 봄이 온다는 말이다. 
예스런 표현으로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봄이 오니 크게 좋은 일이 생기고, 새해에는 기쁜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이라고 했다. 
덕담은 몇 번을 들어도 힘이 난다. 한자가 무겁다면 시인들의 가벼운 메시지를 나눌 일이다. "…추운 겨울 다 지내고/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중)거나 "봄이 일어서니/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나는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누군가에게 다가가/봄이 되려면/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이해인 '봄 일기-입춘에' 전문)하면 저절로 눈이 감기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 새로운 시작
입춘에 한껏 흥을 돋우는 이유는 뭘까. 절기가 농사의 기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쉽다. 섬인 제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채집·수렵 공동체 의존도가 높다. 대표적인 것이 해녀다.

원시사회를 버티게 했던 풀뿌리도, 4차산업혁명의 동력인 정보도 '캔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제주의 생존력은 채집·수렵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농경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근간을 만들었다.

다만 수렵채집사회는 평등한 대신 구성원간 관계 유지를 위해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는경향이 강했다. 농경사회는 평화를 주는 대신 위계화를 발달시킨다. 농경사회의 도래를 두고 '총 균 쇠'의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인류사 최악의 실수",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는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 부를 정도지만 척박했던 제주 섬 땅에 정직한 노동으로 먹고 살 것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탐라국입춘굿이 탐라국왕이 직접 쟁기를 잡고 백성들 앞에서 농사시범을 보이던 세시풍속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제주목사가 섬 곳곳의 심방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직접 제주(祭主)가 되어 벌이는 굿 형태로 발전했다. 마을 원로가 직접 쟁기를 끌고 낭쉐(나무로 만든 소 모형)를 모는 등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제 강점기 문화말살정책에 의해 중단됐던 것이 복원돼 지금은 민관 합동 도심형 축제로 발전했다.

굿판을 벌여 한해 풍요와 행운을 기원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잘 해보자'는 응원과 격려의 의미가 있다. 입춘이 되면 또 집 대문이나 기둥에 복을 바라는 입춘축(立春祝)을 붙인다.

입춘축에 주로 쓰이는 것이 '입춘대길(立春大吉)'이다.'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의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의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百福來)'라는 글을 걸기도 한다.

#두루 살펴 다같이 잘 살자
입춘 세시풍속 가운데는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이 있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꼭 해야 한 해 동안 액(厄)을 면한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밤중에 몰래 냇물에 징검다리를 놓거나, 거친 길을 곱게 다듬거나, 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 일들을 '소리없이'했다. 다툼을 하다가도 입춘 때는 잠시 멈췄고, 생명을 잉태하는 암컷은 제물로 쓰지 않았다. 남을 헐뜯거나 욕하고 싶은 마음도 꾹 억눌렀다.

이날 하루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 일 년 동안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데 못 할게 뭐 있겠냐 싶겠지만 시늉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진심을 가다듬는다는 의미를 새기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시간을 조금 돌려, 코로나19로 세상이 힘들어지기 전인 2019년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의 신년 메시지를 들춰본다. 한 언론사와 신년 대담에서 이 교수는 "암 걸리고 나니 오늘 하루가 전부 꽃 예쁜 줄 알겠다"고 말했다. 죽음이라는 것을 정면에 마주하고 나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사람 만날 때도 그 사람을 내일 만날 수 있다, 모레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농밀하지 않다. 그런데 제자들 이렇게 보면 또 만날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리면 내년에 또 볼 수 있을까. 저 꽃을 또 볼 수 있을까. 그럴 때 비로소 꽃이 보이고, 금방 녹아 없어질 눈들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너는 캔서(암)야. 너에게는 내일이 없어. 너에게는 오늘이 전부야'라는 걸 알았을 때 역설적으로 말해서 가장 농밀하게 사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나쁜 일만은 없다".

코로나19로 삶이 달라진 지 이제 꼬박 1년이다. '얼마나 더'라는 탄식도 점점 지쳐간다. 노(老) 교수의 귀띔처럼 '나쁜 일만은 없다'고 본다면 아직 살만해 진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 있는 날이란 입춘의 의미가 새삼스럽다.

지난해 탐라국입춘굿놀이는 감염병 확산 우려로 중단됐다. 올해는 온라인·비대면 프로그램으로 의미를 새긴다. 농밀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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