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체취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필자가 오래전 그곳을 방문한 것은 전적으로 그를 추억하기 위함이었다. 아를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밤낮으로 고흐를 만났다. 카페에서 길모퉁이에서 정신병원에서 강변에서 고흐의 상처와 예술혼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한 사람이 남기는 것이지만, 그것은 두고두고 역사가 되어 남는다. 아를의 뒷골목을 배회하면서 천재는 천재다운 삶을 산다, 위대한 예술가는 일상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세상에 적응 못하고 떠난 비운의 화가를 부둥켜안은 것은 어쩌면 아를이었는지 모른다. 천재적인 화가는 떠났지만, 그의 예술을 찾는 이방인들은 고흐를 만나기 위해 오늘도 이 작은 도시를 찾고 있다.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출생하여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네덜란드 시절에는 어두운 색채로 비참한 주제의 그림을 주로 그렸으나 파리에서 공부하면서 인상파와 신인상파의 영향을 받는다. 목사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부터 기행을 일삼아 창녀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고, 전도사가 되겠다며 보리나주 탄광촌에 가서 가난한 광부를 돕겠다고 극성을 떨기도 했다. 스물일곱 살 때는 돌연 화가가 되겠다고 자연 속을 전전하며 캔버스에 매달렸다. 

오래전부터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어온 고흐는 아를에서 '노란 집'을 마련하여 고갱을 이곳으로 초대한다. 여기서 고흐와 고갱은 함께 살며 작품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함께 작품 제작에 몰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갱과 빈번히 성격 충돌을 일으켰고 서로를 불신하게 되자,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고흐는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여 격분을 이기지 못해  왼쪽 귀를 면도칼로 잘라버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갱은 파리로 떠났고,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후1890년 봄,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정착했으나 같은 해 37살의 나이로 권총 자살을 하고 만다. 

비극적일 정도로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고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한 사람이다. 고흐의 불꽃같은 예술적 열망과 삶에 대한 뜨거운 투쟁의 기록은 동생 테오에게 보낸 '영혼의 편지'에 잘 기록되어 있다. 고흐의 편지에서 핵심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주제는,  힘겨운 삶과의 고투와 '색'으로 상징되는 그림에의 끝없는 열정이다. 그는 자신의 삶과 예술에의 고뇌를 한시도 벗어나지 않은 작가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자신의 삶과 그림에 깊은 고뇌를 통하여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한 고흐, 우리는 이런 삶과 예술의 깊이에 어떻게 이를 수 있을까.

예술가는 색채와 소리와 언어를 자기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한다. 화가는 세상이 만들어낸 형태와 색채에, 음악가는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에, 작가는 세상의 흔들리는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버릴 무의미한 형상 하나, 소리 하나, 언어 하나도 세상을 사랑하는 예술가의 눈에는 특별한 모습과 기호로 다가온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단지 무언가를 표현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표현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행위다. 그리하여 위대한 예술은 세계를 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어두운 삶을 밝고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예술이란 바로 인간과 세상과의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방문할 수 없지만, 고흐가 그토록 사랑하던 아를의 뒷골목 '노란집' 근처의 카페는 세상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밤새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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