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많고 뒷정리를 잘 하지 않던 어린시절 우리가 자주 듣던 꾸지람이 있다.
"어지르는 사람, 치우는 사람 따로 있어야 하냐? 아무리 열심히 치워도 어지르는 것 못당한다"
지금 우리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어질러진 지구를 마주하고 있다.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는 한사람의 열걸음이 아닌 열사람의 한걸음이 더욱 중요한 때.
지난 7월 하순경 SNS를 통해 전해진 이른 아침의 이호테우 해변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밤사이 해변에서 놀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던 돗자리, 음식 포장 용기, 음식물, 일회용품 등을 놀던 자리에 고스란히 남겨둔 채 몸만 빠져나가 해변 전체가 돗자리와 포장음식, 일회용품 쓰레기의 전시장이 되어 있었다.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도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행정당국은 당장 밤 10시 이후 이호테우 해변 내 취식을 금지시켰다. 규모는 작지만 도민들이 놀다 떠난 자리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우리 역시 대부분 무단투기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말 안듣는 자식들처럼 우리는 불특정 다수의 힘으로 큰 죄의식 없이 어지르기를 실행한다. 버려진 쓰레기에 당장 피해를 입지도 않고 어느새 눈앞에서 치워진다.
제주 해안가 마을에는 바다지킴이(공공근로자)들이 있다. 아침 시간에 바닷가로 플로깅(걷거나 뛰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가면 가끔 마주치기도 한다. 또 희망 근로와 같은 형태로 마을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분들도 자주 보게 된다.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다. 여기서 '치우기와 어지르기'를 따지면 역시 어지르기가 완승이다. 바다 지킴이의 활동이 활발한 지역의 깨끗해 보이는 바닷가도 가까이 다가가 보면 바위 사이사이에는 어구며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여 있다.
깨끗해 보이는 거리도 눈에 띄지 않는 가로수 밑이나 화단에는 음료병이나 플라스틱 쓰레기가, 빗물받이 안에는 담배꽁초가 가득이다. 이렇게 방치된 쓰레기의 대부분은 바다로 흘러든다. 바다는 이렇게 인간이 만든 쓰레기들의 무덤이 되간다.
서핑과 다이빙을 즐기는 젊은층에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그들이 별나서가 아니다. 바다를 가까이하니 문제가 보이고 심각성에 놀라고 바다라는 놀이터를 사랑하니 지키고 싶은 것이다.
"우연히 산책하다 발견한 쓰레기 무덤. 주변에 계시는 분 있으시면 잠시 짬을 내어 힘을 보태 주세요! #급 #플로빙 #봉그깅 #플로깅 #비치코밍 #쓰줍"
지난 광복절 일요일 오전 플로빙코리아(대표: 전장원)계정의 인스타그램(SNS)에 올라온 내용이다. 급하게 한림항 주변 해안 정화 활동(플로깅) 참여를 요청하는 이 게시물에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답글이 올라왔다. 다른 일정으로 혹은 제주도가 아니라 참석하지 못함이 아쉽다는 글들도 달렸다. 한 시간쯤 뒤에는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끌어올리는 시민들의 모습이 인스타그램에 생중계 되었다. 그 시민들 뒤로는 짧은 시간에 저렇게 많은 쓰레기를 건져 올리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수의 쓰레기 포대들이 보였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해양 정화, 환경정화, 지구를 살리자 이런 거창한 이유로 접근하지 않았어요. 누구에게는 직관적 메시지가 더 효율적일지 몰라도 개개인에게는 아직 실천하기 힘들고 다가가기 무거운 주제일테니까요. 가벼운 마음으로 물놀이하면서 소라나 전복을 따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 돌처럼 자리잡고 있는 플라스틱이나 떠다니는 해양쓰레기 몇 개 가지고 나오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또 놀이처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해양쓰레기로 인한 위기의식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여겼죠ㆍ" 전장원 대표의 말이다.
전국적으로 해양 정화활동이나 플로깅을 실천하는 단체의 활동이 활발해 지고 있다. 특히 사면이 바다인 제주에는 세이브제주바다, 플로빙코리아, 디프다, 제주바당, 지구별약수터 등과 같은 단체들이 꾸준히 해양정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프리다이빙이라는 취미활동 과정에서 바닷속 쓰레기를 하나둘 들고나오다 보니 이제는 바닷속 쓰레기를 수거하며 다이빙을 하는 단체가 되었다는 플로빙코리아와 디프다, 제주바당. 해안가를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으로 대표적인 세이브제주바다, 지구별약수터(텀블러가 있는 이용객에게 마실 무료로 제공하는 카페나 매장)근처를 걸으며 플로깅을 하는 환경단체 작은 것이 아름답다(지구별약수터). 이들 단체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한다. 각 단체 명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단체의 활동 내용과 참여방법등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취미활동과 환경봉사를 연결함으로써 재미와 보람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과 지구를 위하는 조금의 불편함을 함께 나누는 이들의 활동은 젊은 층의 호응을 얻으며 친환경 활동을 트랜드로, 가치 있는 시민문화로 만들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