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당 해녀 이어도 사나-신(新)물질로드 - 시작하며
코로나19로 '산다'는 의미가 완전히 뒤바뀐 오늘, 해녀의 삶과 지속가능성이 생존력·생명력으로 해석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녀는 바다에 의지해 산다.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삶터를 개척하고 문화를 전파했다. 그들이 낸 길, 그리고 다시 낼 길은 한반도로 연결된다. 제민일보 해녀특별취재팀은 올해 그 길 위에 선다.
△생존·발전 문화 전파자
제주해녀에 '문화·생업유산'이란 수식어가 보태지며 바다 생태환경에 적응해 물질 기술과 해양 지식을 축적한 생태주의자이자 주체적 경제 활동으로 사회와 가정경제에 주체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민속지식이 바탕이 된 공동체 문화와 호혜적 관계, 대안경제 구조가 제주 해녀의 지속가능성을 지탱하고 있다는 점도 부각됐다. 19세기 말부터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 진출하여 제주 경제영역을 확대했다는 평가도 있다. 개척자라 정리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는 것은 생존과 발전을 바탕으로 한 문화 전파자의 역할이다. 이런 제주해녀·해녀문화의 특성은 포스트 코로나의 방향 설정과 연결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건조해진 지역 사회 내부의 유대감을 회복하며 경기 부흥을 유도하고 유사한 충격을 버틸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문을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이어질 제주 해녀의 공동체 문화와 연계할 때 '지속가능'이라는 추진력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짐'을 지다
신(新)물질 로드의 시작점은 출가해녀들의 기록에서 찾은 '짐'이라는 단어다. 2005년 제주해녀 대하기획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해녀'를 연결하는 고리 중 가장 중요한 질문의 답이다. 제주 해녀들은 왜 바다를 건넜을까, 4면이 바다인 제주에서 다른 지역, 심지어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까지 가서 물질을 해야 했나를 물었을 때 대부분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5세기 후반 무렵은 흉년과 재해, 과중한 부역과 공물 부담, 왜구 출몰 등으로 섬을 떠나는 것이 급했었다.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과 수탈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이어진다.
재일1세대 제주인으로 만난 노해녀는 '뭐 하나 가지고 오지 못했다'고 말했었다. 어려운 시기 입 하나 더는 것으로 짐을 벗었다는 기억을 털어놨다.
모집이나 밀항 등 선택지는 달라도 가지고 갈 수 있는 짐은 크지 않았다. 일본에서 물질을 배웠다는 다른 노해녀는 그 흔한 가족 사진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신 머구리 작업으로 힘겨웠던 시기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찍은 흑백의 '젊은 날'을 꺼냈다. 하지만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 이날까지 돌아가지 못했다"는 마음의 짐을 풀지 못했다.
'작은 제주'라 불리는 구룡포의 제주 출신 해녀들은 '장'짐부터 '돈'짐까지 세대별로 다른 짐을 쌌다고 했다. '장'짐 얘기는 울릉도·독도 출가 해녀들에게도 들었다. 섬을 나오는 것만 꼬박 하루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 입을 것은 호사였다. 먹을 것도 간을 맞출 된장이 고작이었다. 들고 간 장은 이내 바닥을 드러냈다. 다음은 힘들여 잡은 미역이며 전복과 바꿔 먹으며 버텼다. 장을 쌌던 자리 만큼 가족을 위한 돈과 선물을 채웠다.
이제 질 짐은 '약속'이다. 과거 해녀들이 오고 갔던 흔적과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다.
△공생의 결과를 공유하는 일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로 '해녀'라는 이름을 올린 것은 그들의 존재가 어느 한 문화의 독자적인 발명품이나 전유물이 아니라 제주를 중심으로 바다를 타고 전파된 공생의 결과물이자 지역을 살게 한 힘이라는 것을 강조한 결과다.
제주라는 대표성도 중요하지만 제주를 구심점으로 동·서·남해안 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과 중국 등의 특성과 환경이 수십 수백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보태지고 결합된 공동 제작의 산물로 그 가치를 키워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해녀가 우리나라 대표 문화 브랜드로, 제주 공동체 정신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부딪혔던 개척정신과 적응성,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 자연에 순응하며 능력을 인정하는 오랜 전통의 인정이 있었다. 앞으로 진화하고 확산할 수 있음을 '바깥 물질'경로를 따라 확인하는 이유기도 하다.
서해 백령도까지, 동해 울릉도·독도까지, 제주해녀가 만든 부산 영도 등 제주 해녀의 역사성과 시대성, 자원 순환과 경관관리 등 제주 역사와 함께 살아남은 여성 중심의 해양 공동체가 지역을 어떻게 살게 했는지, 새로 '마을'을 만들고 생업기술 전파로 마을을 살게 한 비밀을 출가 해녀와 지역자료 등을 통해 수집해 '한 바당'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고리를 추적한다.
특별취재팀=고미 방송미디어국장,김봉철 부장대우,이진서·김수환 기자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