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지난여름 강렬하던 햇볕과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던 풀잎과 나무들이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저마다 갈 길을 준비하고 있다.
가을에 되돌아보는 일 년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올해만은 꼭 잘 살아봐야지 하고 굳게 다짐하며 시작했던 일 년의 계획이 이제 달랑 달력 두 장으로 남았다.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의 삶 속에서 지난 시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인생 열차는 어느덧 또 다른 정거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우리의 얼굴에는 중년과 노년의 삶의 주름이 또 하나 드리워지게 된다. 지난여름 찬란했던 청춘의 야망은 이제 가슴 속에 추억으로 남은 채 조금씩 타들어간다. 참으로 길고 힘든 여름이었고, 지쳐서 주저앉고 싶었던 힘든 나날이었다. 세월의 무게는 자꾸 커져서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밤에 문득 잠을 깨면 앞으로 남아 있는 삶이 얼마인가 세어보고 놀란다.
이제 새롭게 맺을 인연도 그리 흔치 않다는 것을 알고 슬픔에 잠긴다. 그러나 어찌 할 것인가. 우리들이 아직도 길을 가다 멈춰 서서 저 파란 가을하늘을 쳐다볼 수 있고, 투명한 햇살 속에 반짝이는 코스모스를 바라보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또한 한 편의 시를 읽으며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동서양의 수많은 시인이 노래했듯이, 가을은 삶과 죽음이, 만족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자연의 순환에 몸을 맡기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불태우는 단풍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힘겨워 보인다.
가을이 깊어가면,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가 떠오른다. 프로스트의 시는 종종 단순해 보이지만 삶에 대한 깊은 의미를 주고 있다. 예를 들어 「가지 않은 길」에서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인생의 아쉬움을,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에서는 조용히 눈 내리는 저녁을 바라보면서 죽음에 대한 차분한 태도를 노래하고 있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프로스트의 말대로 우리는 한밤중을 알아야 대낮을 알 수 있듯이, 지난 봄과 여름을 알아야 가을을 알 수 있는지 모른다.
분명 오늘날의 도시 문명은 인간과 자연의 대화보다는 인간과 도시의 대화를 요구한다. 만약 우리가 인간과 도시의 대화보다는, 인간과 자연과의 대화를 강조한다면 이 세상은 더욱 풍요롭고 인간다운 곳이 될 것이다. 프로스트의 숲은 어둡고, 깊으며, 비합리적이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가 만나야 할 것은 나무이고 새이고 꽃이다.
우리들의 마음을 적셔주는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자연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를, 인간의 삶과 자연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를 조용히 생각해보아야 할 시간이다. 그러면, 허덕대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은 보다 밝고 풍요로운 삶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 가을 낙엽 지는 숲속 어딘가에서 한 편의 소중한 시를 읽고 감동하며, 그것을 소중한 벗과 이웃들에게 보낸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