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당 해녀 이어도 사나-신(新)물질로드 8. 경북 해녀

올해부터 4년간 '경북도 해녀 프로젝트' 정체성 확립 목표
대규모 사업 영향 바다 황폐화 가속 마을어장 훼손 고민중 
과거 입어권 관행 분쟁, 고령화 이은 현지화 '제주색' 희석 

 

경상북도는 지난해 동해안 해녀어업을 테마로 한 '경북도 해녀 프로젝트'추진 계획을 알렸다. 당시 공개 자료를 보면 경북 해녀는 2018년 기준 1585명이다. 포항이 1129명으로 가장 많고 경주 191명, 울진 66명, 울릉 10명 등 내륙 시· 도 중에서는 가장 많은 수의 해녀가 활동하고 있다고 집계했다.
올해 자료를 살펴보면 포항 해녀 수는 1068명이다. 전국에서 울산 해녀 수가 두 번째로 많다고 하지만 2019년을 전후해 '가짜'해녀 파문을 겪었던 사정을 감안하면 제대로 된 수를 헤아리기가 망설여진다.

△'사라져가는'수식어

제주와는 다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경북 지역 해녀를 찾아 부산 기장군을 거쳐 울산, 포항으로 움직였다. 기장군은 부산에서도 해녀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해녀 관련 조례도 제주 다음으로 많다. 올해도 나잠어업 가치 확산을 위한 해녀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이들 사업에는 '사라져가는'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해녀복지회관을 따라 기장군을 살피는 동안 '보상'과 관련한 플래카드를 계속해 볼 수 있다. 지난 8월에도 부장 기장군 시랑리 앞바다 마을 공동어장이 육지에서 밀려온 흙탕물로 엉망이 되는 일이 있었다. 흙탕물 띠는 해안을 따라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까지 밀려갔다. 일광해수욕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목격됐다. 이로 인한 피해는 해녀들에게 직접적으로 나타났다. 먼저 만난 부산 영도 고금순 해녀(69)가 보상 요구를 하러 다녀오느라 오전 작업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미래 환동해시대 정책의 하나로 올해부터 4년간 53억원이 투입되는 '경북 해녀프로젝트'에 이런 내용이 포함될까. 해녀증을 발급하고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해녀마을박물관과 마을어장 연계 수산물 복합유통센터를 짓고 문화콘텐츠를 추진하는 것들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지역을 초월한 연대가 필요해 보인다.

△'해녀 안 보내기 운동'도

해녀를 매개로 한 경북과 제주의 인연은 끈끈하다.

근대기 출향 해녀들은 해녀들의 노동력이 경제적 가치가 인정되는 것과 일본 잠수기업자들의 진출로 지역 어장이 황폐화 하면서 생산량이 급격히 수입이 줄자 생계유지를 위해 타 지역으로 진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해방 이후에는 우뭇가사리 작업을 위한 한반도 남부 지역 출향이 성행했다.  '濟州潛嫂權益鬪爭史'(강대원, 2001) 등 관련 자료를 보면 당시 섬인 제주의 연간 우뭇가사리 생산량은 20만근이었던 데 반해 경상북도 지역은 이의 4배인 80만근이나 생산됐다. 현지에 이를 채취할 해녀가 없어 해조류 채취 시기가 되면 제주 해녀들이 모집 등의 방법으로 진출해 작업을 했다.

돈이 오고 가는 일이다 보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우뭇가사리가 중요 수출 품목이 되면서 1948년부터 구룡포, 양포, 대포, 청하, 축산, 영해, 감포 등지에서 2000여 명에 이르는 제주 해녀가 경북어업조합의 지원으로 우뭇가사리 채취 작업을 하였다. 제주 해녀의 집단 이동은 지역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제주 해녀들로부터 수산물의 가치나 여성의 경제활동에 대해 알게된 지역의 30대 이상 기혼 여성들이 물질을 배우면서 육당해녀라 불리는 지선 해녀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1954년부터 표면화된 제주도 해녀와 경북어업조합 간의 생업 관할권 갈등은 법적 투쟁으로 치달았다. '입어권'을 둘러싼 논란은 경북도와 제주도, 지역 출신 국회의원까지 나서 권리를 주장하는 상황이 됐다. 제주도어업조합이 1954년과 1955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도 출가잠수 공동 명의로 입어어장에 대한 재정(裁定) 청구를 하고 입어권을 얻지만 경북어업조합들의 반발이 심했다.

관리 책임과 이윤 분배를 둘러싼 분쟁은 1968년 8월 대구지법 제6민사부가 입어 관행권 소멸을 확인하는 판결을 내리며 끝났다.

이후 제주도가 '해녀 안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경북 지역과 인연은 끝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현지에 남은 제주 해녀들이 있었다. 결혼 등의 이유로, 반대로 가족을 불러들여 지역에 자리를 잡는 경우들이 해당한다.

△어떻게 남을 것인가 고민

경북 해녀가 제주 해녀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고 하지만 경북 해녀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구룡포는 과거 '작은 제주'라고 불렀다. 해녀들을 '아주망'이라 부르기도 했다.

10년 전인 2012년 현지 조사에서 만난 제주 해녀 어머니들은 대부분 바다를 떠났다. 많을 때는 200여명 정도가 작업을 했었는데 지금은 4명이 남아있다고 했다. 모두가 80대다. 

한경 고산 출신으로 세 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연락선을 타고 왔다는 김춘자 어머니 집은 식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송정희 구룡포리 어촌계장(70)은 지선 해녀다. 물질을 한 지는 35년 됐다고 했다. 전형적인 경북해녀다. 타지에 나가 일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온 뒤 먹고 살기 위해 해녀들을 따라 다녔다고 했다. 송 어촌계장은 "처음에는 어촌계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다른 어촌계 작업을 할 때나 일을 했다"며 "그 때는 제주 출신들이 많았다. 다들 물질을 잘했다. 다 각자 벌이인데도 '다음에는 여기서 이렇게 해봐라'하고 귀띔을 해줘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렇게 지킨 바다지만 지금은 인근 어촌계에 해녀가 없는 곳이 더 많아 종종 원정 물질을 나간다. 그렇게 해녀가 떠난 공동 작업장에 인기척이 들린다. 올해 권역별 시민주도 문화사업인 '구룡포 해녀의 밤-바당꽃(숨비소리)축제'준비가 한창이다.

송 어촌계장은 "점점 바다에서 작업하기가 힘들어진다. 스쿠버들과 싸우는 것도 힘에 부치고 물건도 줄었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 없어 뉴딜사업과 접목을 고민했다"며 "거제해녀아카데미 출신을 신입 해녀로 받았는데 막내라고 해도 50대다. 어떻게 해녀 명맥을 유지해야 할지 더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고미 방송미디어국장,김봉철 부장대우,이진서·김수환 기자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해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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