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유럽의 여러 도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동 유럽에 위치한 체코 프라하가 아닐까 싶다. 카를교, 프라하 구시가지, 프라하 성 등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필자도 이곳을 몇 차례나 방문한 적 있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감회에 젖곤 했다. 특히 늦가을에 프라하의 고색창연한 구시가지 뒷골목을 걸을 때, 낙엽이 거리에서 어지럽게 날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존재의 한없는 쓸쓸함을 느끼곤 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거운 존재인가, 가벼운 존재인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체코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밀란 쿤데라의 대표적 장편소설이다. 작품의 배경에는 60년대와 70년대 사이 체코를 위시한 유럽국가를 뒤흔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갈등이 깔려 있다. 지금은 자본화된 체코이지만 쿤데라의 작품 한복판에 주인공인 양 요지부동으로 박혀 있는 슬픈 체코의 모습이 나타난다. 오늘날 존재하는 체코는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유적이 가득한 자유로운 거리이지만, 이 속에는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분열된 존재들의 복합성, 그리고 갈라진 세계와 유럽의 극적 상황을 잘 보여주는 나라가 체코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작가는 어떤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테레사와 토마스는 우연히 서로 만났다가 사고로 함께 죽는다. 그들의 운명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정과 우연한 사건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비극이 낳은 산물이다.
소설은 존재를 관통하는 덧없는 사랑에 대한 잔혹한 메타포로 구성된다. 고향의 작은 술집에서 일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젊은 테레사는 출장으로 그 도시에 들른 외과의사 토마스를 우연히 만난다. 부인과의 이혼 이후 진지한 사랑을 부담스러워하던 토마스는 '강물에 떠내려온 아기' 같은 테레사의 연약한 매력을 놓지 못하고 고아를 떠맡듯 그녀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스스로가 '에로틱한 우정'이라고 이름 붙인 그 '가벼운 삶'을 토마스는 버리지 못하고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한다.
그런 토마스를 지켜보는 테레사는 질투와 체념으로 인한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소련의 침공으로 체코가 자유를 잃은 후, 두 사람은 함께 스위스로 넘어간다. 체코를 벗어나면 토마스의 연인들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테레사는 그의 끊임없는 외도에 절망하며 홀로 국경을 넘어 프라하로 돌아간다. 질투와 미움이 뒤섞인 두 사람의 삶은 그렇게 점차 가벼움과 무거움을 더해 간다.
토마스는 이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되뇌인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쿤데라는 '한번'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이 삶의 무의미함을 철저하게 파헤친다.
토마스는 인간이란 삶과 역사 속에서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랑과 성(性),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없이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지만 오랜 방황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인간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존재를 가벼운 것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무거운 것으로 만들 것인가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달린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