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당 해녀 이어도 사나-신(新)물질로드 13. 정리하며

기후.사회 환경 변화로 전통.생태 지식 소멸 속도
경험.생업 충돌 체계적 관리, 정책 방향 따로따로
'남아있는' '남겨진' 것 연결, 향유자 대상 길 주문

귀덕1리 어촌계 작업 준비 모습.
귀덕1리 어촌계 작업 준비 모습.

지난해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이 해양수산부 해양문화연구총서 시리즈로 내놓은 「섬과 바다의 전통지식」에 '해녀'에 대한 기술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마을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독자성을 가지고 있고, 구성원의 가입이 차별화된 특수한 형태의 집단으로 정리했다. 현재까지 맥이 이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특수 집단으로 '무형유산'과 전통 지식의 연결에 유용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봤지만 전승.유지에 있어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오랜 세월.삶 축적
과연 그럴까. 이번 기획을 진행하며 '무엇을' '어떻게'가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해녀문화의 기반인 전통 지식은 무형유산의 여러 범주 중에서 생활과 가장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익숙한 만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생활의 급격한 변화는 전통지식의 소멸을 가져왔다. 특히 해녀는 공동체이자 개인이라는 특수성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바다라고는 하지만 작업 환경의 차이, 산업구조의 확장과 재편 등에서 많은 변화를 겪는다.

제주를 제외한 지역들에서는 전통.생태 지식이 파편화하는 경향이 강했다. 기후변화가 생업 어장의 환경을 바꿔 해녀의 활동 공간 이동과 해체를 촉발했다. 한편으로는 이를 기후 위기 대응이 사회.생태계 회복과 지속가능성 확보로 연결하는 사례도 나온다.

해녀는 어느 한 문화의 독자적인 발명품이나 전유물이 아니라 제주를 중심으로 바다를 타고 전파된 공생의 결과물이자 지역을 살게 한 힘이다. 제주가 중심이 되고 동·서·남해안 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과 중국 등의 특성과 환경이 수십 수백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보태지고 풍화한 공동제작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천포 어촌계 인턴 해남 우승호씨.
공천포 어촌계 인턴 해남 우승호씨.

△'제주는 다르다' 의미
이런 내용들을 알면서도 활용하지 못하는 한계에는 '생업에 기반한'이란 태생적 배경이 있다. 전통지식의 경제성과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해녀문화는 공동체와 회복 같은 부분만 강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돈이 되는', 이른바 경제적인 부가가치가 높은 전통 지식은 공유 대신 공동의 이익을 가진 구성원들의 몫으로 전승되는 경향이 강하다.

동일한 생업에 종사하면서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는, 그리고 마을이나 지역을 넘어서지 않는 상황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이나 국가어업유산, 문화재청 지정 국가무형문화재 등의 타이틀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동.서.남해안의 해녀들은 하나 같이 '제주는 다르다'는 말을 했다. '한바당'이란 전제를 달았지만 제주와 같지 않은 상황을 아쉬워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같을 수 없는' 이유다.

바다에 의지해 생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같지만 제주해녀는 어촌계원으로 마을어장에 대한 관리와 권리를 모두 가지고 있다. 물때에 맞춰 작업을 하는 물질의 생태적 특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잠수굿 등 민속지식, 금어.금채기간과 공동어장에 대한 공동체 규약을 지키고 있다. 공동체 문화에 대한 인식과 자부심도 높다.

부산 지역 해녀들은 어촌계에 가입해야 작업을 할 수 있다. 경북 동해안 지역 해녀들은 마을 바다에서 작업하기 위해 어촌계에 30%의 입어료를 낸다. 포항 구룡포 등 일부 지역은 해녀가 없는 물질이 많아 인근 해녀들의 '객지 물질'이 보편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영 해녀들은 선주가 계약한 어장에서 뱃물질을 한다. 어촌계 소속도 아니다. 1년간 탈 배를 정하고, 풍랑 주의보 이상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면 거의 매일 바다에 나간다. 나잠부녀회가 조직됐지만 제주의 해녀(잠수)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제주 해녀에게서 '어깨 너머' 물질을 익힌 경우가 많지만 일정 시기가 되면 지역 해녀들에게 밀려 다른 바다로 옮겨가는 일이 많았다. 가족을 따라 이주했다가 다시 물질을 하거나 새로 물질을 배운 경우도 적잖다. 제주 2세대는 물론 3세대 해녀까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가 계속해 생겨난다.

△다시 더 열어야 할 문
제주해녀가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배경에는 마을이 있다. 김귀현 귀덕1리 해녀회장(46)은 이주 후 2017년 귀덕1리 어촌계에 가입했다. 허리 위로 물이 올라오면 겁을 먹었다는 김 해녀회장이 '해녀'가 될 수 있던 배경에는 마을이 있었다.

김 해녀회장은 "마을 삼촌들이 해녀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할 때마다 거절을 했었는데 몇 년 정착하고 나니 삼촌들이 아니면 아이를 키울 수도 제대로 살 수도 없겠다는 걸 알게 됐다"며 "생활 반경 안에 마을이 있어야 책임감이 강해진다. 해녀를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부터 이해한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전승'에 대한 유연한 해석이다. 생업에 묶여 할 수 없던 것을 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 순위다.

서귀포시 김형준 공천포어촌계장(54)은 해남이다. 제주 이주 후 우여곡절 끝에 7년 전 해녀회 총회에서 '같이 물질을 할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올해 2월 인턴 해남을 받았다. 수습 중인 우승호씨(42)는 충남 논산 출신으로 육군에서만 15년 복무했다.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따고 관련 일을 하려고 하다 우연히 해녀를 알게 됐다. '조직(공동체)'이라는 특별함에 끌려 해녀학교의 문을 두드렸지만 가입할 수 없었다. 다시 이력서를 들고 여러 어촌계를 돌아다니다 공천포 어촌계와 인연을 맺게 됐다. 우씨는 "삼촌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조건이었다"며 "목적을 가지고 물질을 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군에서 익힌 위험예지판단 능력 같은 것이 삼촌들에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직접 물질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녀를 모티브로 한 창작 활동이나 해녀의 기억과 특유의 작업 문화를 문화콘텐츠로 연결하는 작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제주 해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시작한 길은 '남아있는'보다 '남겨진'것의 의미로 이어진다. 차이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다시 길을 만드는 방법도 고민하게 됐다. 새로 찾은 길은 매력적이다.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여 그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유지하게 하는 방법부터 해녀 문화 향유 기회를 확장하는 것까지 아직 열지 못한 문이 무수히 남아있다.

특별취재팀=고미 방송미디어국장,김봉철 부장대우,이진서·김수환 기자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해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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