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롤랑 바르트 「기호의 제국」
오늘날 우리는 모두 얼굴을 잃어버렸다. 마스크에 덮힌 얼굴은 서로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비단 코로나 시대가 아니어도 현대적 삶의 상황은 갈수록 획일화되고 단편화되면서 인간성 상실을 낳고 우리를 '얼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만든다. 그리하여 하루하루 메마르고 반복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더 나아가 '우리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묻게 된다.
나의 진짜 얼굴을 찾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운명인지 모른다. 두 개의 얼굴 속에서 갈등하는 존재의 모습은 신화 속 야누스처럼 항상 상반된 시선 사이에서 갈등한다. 자아와 타자, 안과 밖,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우리는 다른 얼굴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주체 상실에 대한 의문은 반복된다.
지금 우리는 휴대폰과 컴퓨터 같은 놀랄 만한 정보와 통신 수단을 누리며 살아가지만, 역설적으로 타자와의 의미 있는 소통은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세상 사이의 소통 부재는 타자의 목소리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추방하는 것은 물론 삶의 상황을 갈수록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주체적 존재가 아닌 상자 속 틀 안에 갇힌 채 얼굴에 QR 코드가 붙은 상품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말하자면 현대사회는 인간을 존엄한 개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하나의 부품이거나 상품일 뿐이어서 그 틀에 의해 통제되고 길들여지기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인간은 익명의 얼굴 없이 살아가는 존재이며, 이런 세상에서 '나의 얼굴 찾기'에 대한 고민은 깊어 간다.
손편지가 사라진 지는 오래되어서 갈수록 편지나 전화보다 휴대폰 문자나 카카오톡을 많이 한다. 특히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은 우리에게 이미 하나의 언어가 되어 효과적 의사소통을 위한 보조 언어의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감정 언어가 되었다. 인간의 표정을 이모티콘이라는 표정이 대신하면서 그들이 인간의 얼굴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사람들이 서로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나누는 사랑도 그리움도 사라질 것이 아닐까.
얼굴 없는 익명의 세상에서 진정한 나의 존재와 정체성은 이제 갈수록 사라져 간다.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가 「기호의 제국」에서 말한 대로 우리 얼굴은 모두 남의 것을 모방한 '인용'의 표식일 뿐이다. 누군가와 꼭 같은 머리 스타일을 만들고, 꼭 같은 화장을 하고, 꼭 같은 표정을 짓고 모두 독창적인 얼굴이라기보다는 다른 타자의 얼굴을 모방하기에 바쁘다. 몸이 그러할진대 우리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몸과 마음이 모두 동일하게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얼굴 없는 세상에서 나의 얼굴은 사라지고 이 암울하고 끔찍한 세상에서 언제까지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지만, 내 진짜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 끝없이 고뇌할 때에야 진정한 나의 모습은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얼굴 없는 세상에서 무언가로도 대체 불가능한 나의 얼굴 찾기를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자신이 당당한 존재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