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쉘 실버스타인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

겨울나무는 텅 비어 있다. 겨울나무에는 지난여름의 푸르름이나 가을의 풍요로움은 없다. 푸르던 잎은 거름이 되고 열매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새들에게 빌려줬던 가지도 빈 둥지가 되었다. 그러나 겨울나무는 슬프지 않다. 곧 새봄이 오면 지금 텅 비어 있음이 더 많은 것을 채우기 위한 예비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때로 공허해야 한다는 것을 때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때로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겨울나무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생명은 단지 한 개체로서의 생명이 아니다. 겨울을 견딘 나무는 봄이 되면 잎과 꽃을 만들고, 가을이 되면 낙엽을 떨구고, 다시 겨울나무가 된다는 생명의 순환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생명이란 우주와 자연현상을 움직이는 순환의 원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연의 원리와 이치는 인간과 삶의 진리로 전회한다. 그것은 절망과 희망, 죽음과 재생, 분열과 화합, 거짓과 진실이라는 인간사의 변화와 윤회를 말하는 것이다. 

나무에는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이 함께 한다. 나무의 나이테에서 볼 수 있듯이, 나무는 바깥에서 안을 채우면서 삶을 유지한다. 스스로의 죽음을 끌어안고 삶을 유지하는 셈이다. 나무도 나이를 먹지만 나이를 수직적으로 쌓지 않는다. 나무의 나이는 수평적이다. 이에 반해 죽음과 늙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은 나이를 수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늙음과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수백 년의 수령(樹齡)을 누리며 살아가는 나무가 오랫동안 사색하면서 인간보다 장수하는 것도 이런 차이 때문은 아닐까.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는 나무와 인간과의 관계를 잘 말해준다. 지금까지 인류는 나무 덕(德)에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무로 집 짓고, 땔깜으로 추위를 이기고, 나무열매는 약재와 먹거리가 되어 주었기에, 우리는 나무 덕분에 살아왔다.

나무는 몸의 표상이며, 어머니인 대지에 뿌리를 박고 세계와 우리를 이어주는 정주와 정착의 이미지를 제공해 준다. 봄부터 겨울까지의 계절적 순환 속에서 탄생과 죽음사이의 일체성을 보여주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소통의 매개물이며,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삶의 근거가 되어주었다. 

자연에 대해 이기적(利己的)인 인간에 비해, 나무는 참으로 이타적(利他的) 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내어주는 나무는, 늘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부모님 마음과 닮았다. 수필가 이양하 선생의 말대로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살아 있는 것 자체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듯하다. 그야말로 '고독의 철인'답게 독락(獨樂)의 경지이다. 오래된 우람찬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 한가운데 나보다 더 존귀한 존재는 없다는 듯'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모습이다. 수많은 인간과 어울리며 덧없는 불화와 갈등과 위선을 만들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 비해 나무처럼 혼자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은 최고의 경지일지도 모른다. 숲길을 걷다가 홀로 서있는 한그루 나무와 마주서면 그 고고한 영혼이 가슴이 와 닫는 것을 느낀다. 나무는 인간 없이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지만, 인간은 나무 없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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