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앤서니 스토 「고독의 위로」

밤새 창밖에서 후둑후둑 봄비가 내린다. 오늘도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어딘가로 보낼 원고를 만지고 있다. 밤비가 내리는 날에는 여러 가지 깊은 상념에 젖어든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내 곁을 떠나가는 사람들, 제 몸을 태우며 혼자 타들어가는 촛불, 밤비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끄집어내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새김질하면서 반성과 사유의 시간을 갖게 한다. 

밤늦은 시간, 시골 어딘가에서 지금 깨어 있는 것은 나와 빗소리와 음악 소리와 주변에 흩어진 사물들뿐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로 이어진다. 비는 어딘가로 떠나가는 여행의 출발점이 면서 외로운 사람을 더욱 고독하게 만든다. 고독이란 흩어진 자아를 한자리에 모으는 소실점과 같은 것이다. 밤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을 찾아 내밀하고도 호젓한 여행길을 떠나본다.

고독하다는 것이 반드시 외롭고 힘든 것만은 아니다. 고독은 혼자의 외로움을 견뎌낼 만큼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고독이야말로 진정한 나와 만나는 시간이며 인생을 생각하고 추억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고독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혼자 있어 보라. 그 그윽함과 외로움에 머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면 나의 모든 것이 새로이 보인다. 

혼자 있고 고독해지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영국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앤서니 스토는 「고독의 위로」에서 "혼자 있는 능력은 귀중한 자원이다.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느낌과 접촉하고, 상실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태도를 바꾼다"고 했다. 

이 요란하고 불안정한 세상에서 홀로 고독에 잠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정한 나를 돌봄이 없이 타인을 바라보며 그들에 휩쓸려 시끄럽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자발적 고독이란 바로 이 세상의 온갖 헛된 욕망과 유행에서 벗어나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사는 태도를 말한다. 

고독이야말로 혼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중요한 축복이다. 풍요로운 인생이란 고독한 순례자의 것, 스토는 '고독'이란 일생의 임무라고 하면서 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 자기에게로 떠나는 고독한 여행을 권유한다. 자신의 인생을 고독으로 다채롭게 채워 자신만의 능력을 펼쳐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존재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인 릴케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위대한 내면의 고독이다. 오랫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자신 속에 머물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데카르트도 칸트도 니체도 홀로 살아가다가 절대 고독의 상황에서 죽었다. 내가 감히 저들의 먼발치에도 닿을 수 없을 것이지만, 삶에 드리워지는 피할 수 없는 고독은 세상과 인생을 새롭게 사유할 수 있게 하는 큰 선물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인생은 어차피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는 자기 앞에 놓인 시간과 고독하게 싸워서 마침내 어딘가에 당도하게 된다. 

인간으로 태어나 힘든 삶의 길을 여태 무사히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촛불을 밝히고 밤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인간으로서 귀한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 이 시간 이곳에서 평화롭게 숨쉬며 살아가고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고귀한 축복에 대해서 부모님과 조물주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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