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영화 '금지된 장난'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프랑스 북부의 시민들이 남부 프랑스로 피난 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미취학 아동 폴레트도 부모와 함께 피난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독일군 전투기들이 피난 행렬을 향해 기총 사격을 가한다. 유명한 영화주제곡 '금지된 장난'의 아름다운 선율이 전쟁의 참상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인간이 저지르는 장난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고 비극적인 것은 전쟁이다. 고대의 트로이전쟁에서부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인간과 세상을 가장 야만적이고 반문명적인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국가간의 전쟁이란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웃과 다투는 것과 같은 이유로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고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삭막한 현대문명의 비인간화가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일으킨 전쟁이 백일이 지났다. 도시는 폐허가 되어버렸고 힘들지만 평화롭게 살아가던 사람들은 전쟁의 고통 속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망가진 도시는 복구하면 되겠지만 전쟁을 겪으면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겪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전쟁의 현장에서 멀리 있는 우리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거리에서는 연일 공습경보가 울리고 어딘가에서 날아온 미사일과 포탄이 머리 위를 날아다닌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어린아이와 여성, 노인 같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참혹하게 학살당하고 있는 현실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6·25 전쟁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소설이 아니라 기자로서 수집하고 인터뷰한 전쟁의 참상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책이다.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여성들이 겪은 전쟁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당시 소련의 여자들은 무자비한 독일군에게서 나라를 지키겠다고 남자들과 똑같이 총칼을 들고 싸웠다. 어린 소녀들부터 엄마들까지 많은 여성이 총을 들고 독일군에 대항했다. 전쟁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온 겨우 스물한 살의 여성은 노파처럼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고 한다. 

불과 백 년 전에 있었던 격렬했던 독·소전쟁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소련이라는 한나라로 독일과 사력을 다한 전투를 했는데, 이제는 두 나라로 갈라져 전쟁 중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지금도 전쟁은 진행 중이고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 자꾸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고 안타깝다.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생길 것인가.

사랑하는 아이들과 생이별 하고 울고 있는 어머니, 삶의 터전을 잃고 길거리를 헤메고 있는 노인들, 전쟁의 폐허 속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그 속에서는 '금지된 장난'의 슬픈 선율이 들려 온다.

전쟁은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면서 깊은 상처를 만드는 미친 짓이다. 전쟁은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 비극을 낳는다. 깊은 비탄에 잠겨 있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아픔을 함께하며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일상이 회복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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