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인간의 삶은 이 세상의 모든 대상으로부터 서로 '스며들기'의 과정에 의해 영위되어간다. 사전적 의미로 '스며들다'의 의미는 '스미다'와 '들다'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합성어로 마음 깊이 배어들고 느껴지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 스며들어 간다. 삶이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혹은 세상과의 인연과 교감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인연'이 있고 '교감'이 있다. 어떤 인연은 깊은 교감으로 맺어지게 되고, 어떤 인연은 짧은 교감으로 그치고마는 경우도 있다. 교감이란 말 그대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며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동물들과 관계를 맺을 때 자주 등장하는 정신적 정서적 교감이란 마음이 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교감은 소통보다 더 진화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교감이 없으면 사람 사이의 깊은 관계가 가능할까. 서로에게 스며드는 감정과 교감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인연은 깊어 진다.

언젠가 티벳 오지를 여행할 때, 그곳 사람들과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빛과 몸짓으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함께 나눈 적이 있다. 포르투칼 리스본으로 야간열차를 타고 달려가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애절한 파두를 부르며 이별과 귀환을 생각하던 기억이 난다. 그들과 교감을 나눈 것은 단순히 언어나 몸짓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들과 함께 가슴과 가슴을 열고 마음과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과 생각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어둠은 빛 속으로 스며들고, 죽음은 생명 속으로 스며든다. 안도현의 시 <스며드는 것>에서도 이런 모습은 잘 보여진다. 간장게장을 담그는 과정을 통해 모성애를 표현한 이 시는 읽을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어찌할 수 없어서/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한때의 어스름을" 알면서 엄마 꽃게는 알들을 안심시킨다. 알들이 간장에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19세기 영국 최대의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에는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하면서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품에는 가정이라는 일상과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랑으로 인해 상처를 입지만 상황을 냉정하게 정리하고 자신의 고통을 내면으로 받아들이는 엘리너, 상대방의 변심을 알게 되자 실망하여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지는 메리앤, 엘리너를 사랑하면서도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해 이를 표현하지 못하는 에드워드, 젊고 매력적이지만 금전의 유혹에 빠져 메리앤을 배신하는 윌러비 등,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른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은 모두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스며들어 가는 존재이다.

『이성과 감성』의 인물들이 잘보여주듯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면서 사랑을 나누고 인생을 살아간다. 서로 다른 '이성'과 '감성'을 나누고 함께 먹으면서 인간은 살아간다. 우리의 삶에서 이성은 이성대로 감성은 감성대로 제 역할로 소중하다. 이들은 서로에게 빛으로 생명으로 스며들면서 살아간다.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다. 사랑과 원망을 함께 나누고 스며들어 가면서 서로는 사랑의 꽃이 되고 미움의 꽃이 되어간다. 사랑은 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 조금씩 물들고 스며들어 가는 것이다.

덥고 지루하던 여름의 더운 공기가 서서히 차갑고 싸늘한 기운으로 바뀌어간다. 오가는 계절과 함께 어느새 찾아온 가을바람이 몸과 마음에도 새로운 기운으로 스며온다. 인생의 여름과 가을이 오가는 것은 나도 모르게 서서히 다가와 스며드는 계절의 기운 탓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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