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나사니얼 호손 「주홍 글씨」
「주홍 글씨」는 1850년에 미국 소설가 나사니얼 호손의 대표작이다. 호손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세일럼에서 태어난 19세기 미국 문단의 개척자였다. 4세 때, 부친을 잃어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고, 음울하고 고독한 성격의 호손은 학교 수업보다는 책을 많이 읽고 문학에 관심이 있어 시인 퐁펠로우와 프랭클린 등과 친교를 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미국사회에서 청교도적인 전통의 '악과 도덕적 책임'에 입각하여, 인간의 내면적인 문제를 집요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그로인해 일부에서는 그의 작품이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난도 있었으나, 냉정하면서도 이지적인 성찰을 통해 삶과 인간의 문제를 평이하고 적확한 문장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홍 글씨」는 청교도 목사 딤즈데일의 죄책감과 그와 간음한 헤스터의 순수한 마음을 대비시켜서 17세기 미국 청교도들의 위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간음한 헤스터에게 'A'라는 붉은 낙인을 찍는다는 설정에서 붉은 낙인 '주홍 글씨'는 인간을 얽매는 굴레를 뜻한다.
헤스터 프린은 갓난 아기를 안고 처형대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마을의 군중의 주목했다. 헤스터 옷의 가슴에는 A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헤스터가 Adultery(간통)을 저질렀다는 의미였다. 청교도 문화가 깊게 뿌리박힌 그곳에서 간통을 사형에 해당할 만큼 중죄였다. 그래서 헤스터는 A라는 글자를 자수 놓으며 그 죄의 심각성을 계속 생각해야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중범죄자라는 것을 드러내야했다.
사람들은 같이 간통을 저지른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헤스터를 계속 추궁했다. 하지만 헤스터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다. 사람들은 헤스터를 조롱하고 비난했지만 아서 딤스데일이라는 목사는 그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기 원했다. 헤스터의 남편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함부로 처벌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에 사람들의 의견이 모인다.
작품에서 작가는 여러 등장인물 중에서 과연 누가 가장 악인일까를 독자에게 묻고 있다. 목사를 유혹해서 간통을 저지를 헤스터일까? 자신의 명예를 위해 계속 죄를 숨긴 딤스데일일까? 복수에 눈이 멀어 딤스데일을 말려 죽인 칠링워드 일까? 아니면 낙인을 찍어 헤스터를 비롯한 죄인들을 따돌리는 군중들일까?
개인의 관점에 따라서 해석은 다양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시대야 간통죄도 폐지가 될 만큼 간통이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책의 배경에서는 간통이 사형에 해당할 만큼 심각한 죄라고 인정되는 시대였다. 당시에 간통이란 오늘날로 따지면 거의 살인과 맞먹는 죄였던 것이다.
헤스터와 딤스데일은 살인을 저지른 공범인 셈이다. 헤스터는 죄를 고백하고 민중에게 뭇매를 맞으며 정말 바르게 살아간 경우다. 딤스데일은 자신이 목사라는 신분 때문에 끝까지 이 사실을 숨긴다. 칠링워스는 피해자의 유족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밝혀지지 않은 공범을 찾아내 자신의 힘으로 복수를 한다.
헤스터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세상이 너무 가혹하다. 어떻게 보면 이미 지나간 일임에도, 처벌을 받았음에도, 죄를 저질렀다는 꼬리표는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렇게 평생을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조롱을 당한다. 딤스데일 입장에서도 참 난감하다.
목사라는 신분 때문에 자신의 죄가 밝혀지면 사실상 딤스데일의 인생은 거기서 끝난다고 보면 된다. 그 동안 선행을 하면서 쌓았던 평판도,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얻어낸 목사자격도 한 번의 실수로 모두 물거품이 돼버린다. 그래서 매일 같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그 고통을 견뎌가며 살아간다. 속죄의 의미로 사회를 위해 더욱 좋은 일을 하고자 한다.
죄와 구원의 문제는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도 흔히 발생하는 주제이다. 모든 인간들은 크든 작든 죄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어떻게 속죄하고 구원받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