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배가 떠난다. 제주-오키나와-대만을 잇는 5000㎞ 100일간의 평화의 항해다. 무동력 요트 '요나스 웨일호'에 5명의 크루원이 탑승하였다. 오후 2시에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떨리는 마음으로 강정포구를 향하는 발걸음은 사실 무겁고 불안하였다. '공평해프로젝트'팀이 보낸 사전 안내 문자에는 이런 설명이 있었다. 

2023년 6월1일부터 9월 10일까지 약 100일간 무동력 요트 '요나스 웨일'호를 타고 5명의 크루원들이 100일 간의 항해를 떠납니다!

제주도와 오키나와 섬 그리고 대만의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을 응원하고 이 섬들이 둘러싸고 있는 동아시아의 바다를 전쟁도 군대도 없는 비무장평화의 바다로 만들자는 희망을 전파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바다를 공존과 평화의 바다라는 뜻으로 '공평해' 라고 부릅니다.

배를 타고 풍랑과 싸우며 이들을 찾아가는 것은 비행기로 가서 만나는 것보다 물론 더 힘들고 위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굳이 바람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서 그들을 만나려는 이유는 우리의 만남을 더 의미심장한 사건으로 만들고 더 값진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오후 2시, 강정포구에는 비가 내렸고, 안전항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노래와 기도와 퍼포먼스로 두려운 마음을 응원의 열기로 녹였다. 5명의 크루원들은 두려움에 가득찬 사람들을 안심시키려 웃음띤 얼굴을 자주 보여주었으나 끝내 벅찬 감동과 두려움을 눈물을 보이는 크루원도 있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말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종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소으로 "기도하겠습니다"를 되뇌고 있었다. 기도하겠습니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들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박용철 시, 「떠나가는 배」 전문

어디서 많이 듣던 노래 가사다. 가수 김수철이 불렀던 '나도야 간다' 가사의 일부가 이 시에서 차용되었다. 젊은이가 무슨 이유로 고향과 정든 사람들을 두고 떠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 발표년이 1930년인 걸로 보아 조국을 잃은 식민지 조국 청년의 서글픔을 노래한 거라 해석도 무방할 것이다.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며 자신에게 항변하지만 "안개같이 물 어린 눈"이 되고 만다. "앞 대일 언덕" 없는 예측할 수 없는 멀고 먼 항해에 두려움도 크지만 스스로를 다잡는 심정으로 "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 거냐/나 두 야 간다."를 외쳐보는 것이다. 

왜 두려움이 없겠는가. 낯설고 물설고 말설은 땅에 발을 내딛는다는 건 사방에 상어떼가 막아선 바위틈의 문어 신세와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 앉아 있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이 양심과 정의에 길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의 결과가 비록 죽음이라 할지라도 젊은 정신의 표징은 행동하는 정의에 있는 것이니 "나두야 간다"를 외치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외침이다. 

영화 '트루 스피릿'의 실제 인물이기도 한 제시카 왓슨은 '핑크레이디'라는 요트를 타고 세게일주 항해에 성공한 여성이다. 2009년 9월, 그녀의 나이 16세에 단독으로 요트애 몸을 싣고 뉴질랜드와 피지,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를 거쳐 7개월 만에 시드니 항으로 귀환한다. 4만5000㎞의 대장정이었다. 7번의 전복사고 위험이 있었고, 21미터가 넘는 파도가 그녀를 덮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 5월 15일 무사히 그녀는 귀환했고 호주의 영웅적인 청소년으로 추앙받게 된다. 하지만 영웅담으로 읽힘으로써 그녀의 행동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책, '16살 나는 세계일주로 꿈을 배웠다'는 역설적으로 꿈이라는 게 먼저 세우고 가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세계 내 전쟁과 폭력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되는 평화항해, 100일간의 여정을 안전하게 마치고 다시 제주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런 절박한 항해에 어떤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해석으로 왜곡하는 무례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무사 안녕, 평화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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