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 뒷길을 몇 번 돌았다
옛집 찾으려다 다다른 막다른 길
골목은 왜 막다르기만 한 것일까
골과 목이 콱 막히는 것 같아
엉거주춤 나는 길 안에 섰다
골을 넘어가고 싶은 목을 넘어가고 싶은 골목이
담장 너머 높은 집들을 올려다본다
올려다볼 것은 저게 아닌데
높은 것이 다 좋은 건 아니라고
낮은 지붕들이 중얼거린다
나는 잠시 골목 끝에 서서
오래된 것은 오래되어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래된 친구 오래된 나무 오래된 미래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나무가 미래일까
오래된 몸이 막다른 골목 같아
오래된 나무 아래 오래 앉아본다
세상의 나무들 모두 無憂樹 같아
그 자리 비켜갈 수 없다
나는 아직 걱정 없이 산 적 없어
無憂 무우 하다 우우, 우울해진다
그러나 길도 때로 막힐 때가 있다
막힌 길을 골목이 받아적고 있다
골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고
옛집 찾다 다다른 막다른 길
너무 오래된 골목
(천양희 시 「오래된 골목」)
우연히 20여 년 전 살던 골목을 다시 가게 되었다. 담에 분홍색 페인트칠을 한 집 빼고는 모든 게 그대로다. 그대로여서 반갑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그대로인 골목은 집주인이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골목 안에 깃든 사람들의 처지가 고만고만하다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변한 게 있다면 아이들일 것이다.
골목에서 웃고 떠들고, 싸우고, 울고, 벽을 발로 차던 아이들 중에는 결혼해서 애를 낳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가장 궁금한 사람은 '꽃할머니'인데 소식을 알 길이 없다. 경로당에서 배운 종이접기 솜씨로 종이학을 접어 내 아이에게 선물했던 분이다. 얼추 나이를 따져보니 아흔은 훨씬 넘었을 듯싶다. 옆집에라도 물어보고 올 걸 하는 걸 하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는 표현이 막다른 골목을 연상케 한다. 살길이 없다고 여겨지는 막다른 골목에 서 있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의 최후를 골목이 받아적어 줬으면 좋겠다고. 내 아이를 부탁한다고. 유행가 가사처럼 들릴지 모르나 엄연히 누군가에게 있는 현실이다. 다급하게 밀려올 수도, 소리 없이 다가오기도 한 그런 현실 말이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들었다. 어느날, 내 삶의 자리가 어떤 것에 의해 완전히 무너져버린다면 나는 영화 속 주인공 이태신처럼 마지막 항전을 하듯 무모한 불 속으로 뛰어들었을까? 아니면 미꾸라지처럼 눈치 백단의 감각으로 내 몸에 불운이 다가오기 전 골목을 빠져나갔을까? 아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우왕좌왕 하다 사살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아직 살아 있다. 골목에 버젓이 서 있다.
마음이 깨끗해지는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장양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혼의 순례길'이다. 대강의 줄거리는 예측한 바이지만 감상의 뒤끝은 사뭇 다르다. 힘들겠다, 숨차겠다, 아프겠다…, 주로 감각의 반응에 주목했던 지난날의 감상과는 달리 순례길에 나선 던 자들의 각자의 죄목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누군가의 처벌 없이, 자신이 자신에게 처벌을 가하는 자발성에도 감탄했다.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다.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신들의 땅'이라 불리는 성지 라싸와 성산 카일라스산으로 순례를 떠나는 것이 일생일대의 꿈인 모양이다. 순례길은 자신을 위한 길이라기 보다는 '타인을 위한 기도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놀랍다. 다큐멘터리 '영혼의 순레길'은 같은 마을 세 가족 11명의 이야기이다. 죽기 전에 순례를 떠나고 싶다는 노인, 살생을 너무 많이 했다는 소 백정, 출산을 앞둔 임산부와 어린 소녀 등이다.
이들은 1년 동안 2500㎞에 달하는 거리를 향해 삼보일배를 하며 간다. 그 과정에서 아기가 탄생하고, 노인은 죽는다. 극영화라고 해도 믿을만한 삶과 죽음의 사건이 1년여의 순례길에서 자연스레 생겨난다. 갓 태어난 아기도 순례자가 되는 이야기의 플롯이 마치 잘 짜여진 각본처럼 자연스럽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극영화를 이렇게 만들려고 했다면 너무 작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이며 사실이다. 웃고, 울고, 가슴 아프고, 가슴 후련한…, 순례길의 여정을 따라 걸으며 나는 나의 죄목에 대해 생각했다. 방관죄, 너무 많은 것을 내 일이 아닌 양 바라보기만 죄가 가장 클 듯 하다. 타인을 위한다며 생색낸 일들이 사실은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고백해야 할 듯하다. 나에게 타인을 위한 기도는 개미보다 적다. 삼배일보는 필연인 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