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칼릴 지브란 「눈물과 미소」

인간은 일생동안 많은 눈물을 흘린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흘리는 출생의 눈물, 어린 시절 부모들로부터 야단을 받으면서 흘리는 눈물, 고통스럽고 힘든 인생으로부터 느끼는 실의의 눈물, 친구와 연인들로부터 배신당하고 흘리는 눈물, 삶은 눈물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체로 인간은 신체적 자극으로 눈물을 흘리지만, 정신적인 이유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 눈물은 인간 내면의 원초적인 욕구와 감정의 표현 방식으로 이성과 감성, 마음과 영혼의 갈등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유아기 시절의 인간은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에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를 울음으로 표현한다. 독립적인 생존이 불가능한 유아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욕구를 강력한 신호인 울음으로 표현한다.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눈물의 빈도는 줄어들지만, 눈물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이어서 언어보다 더 강한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눈물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눈물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람에 따라 변한다. 모든 일이 잘 풀려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반대로 모든 일이 안 풀려서 실패와 낙담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부모님이나 가족 중에 질병이나 노환으로 돌아가실 때 흘리는 안타까운 눈물도 있다.

인간적·사회적 의미를 넘어서 종교적 의미를 지닌 눈물도 있다. 기독교에서 눈물은 회개, 믿음, 소망, 사랑 등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 눈물은 눈물로 끝나지 않고 구원의 세계로 이어진다고 성경은 말한다. 영혼을 정화하고, 진리의 세계로 나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거짓 눈물 혹은 위선적인 행위를 이르는 '악어의 눈물'도 있다. 악어의 눈물은 이집트 나일강에 사는 악어가 사람을 보면 잡아먹고 난 뒤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고대 서양 전설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리는데, 이는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먹이를 삼키기 좋게 입안에 수분을 보충시켜주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의 눈물은 언제나 슬프다. 옛사람에게는 강이 주로 이별의 장소였다. "그대여 물을 건너지 마오"로 시작되는 고대가요 '공무도하가'에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슬픈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 노래에서 물을 건넌다는 것은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다는 의미다. 노래를 부르는 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물을 건너지 않기를 간절히 애원하지만, 결국 임은 물을 건너고 둘은 헤어진다. 

이별은 인생의 불가피한 부분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친구와 헤어지고, 심지어 자신과 헤어져야 할 때가 있다. 깊이 정들었던 짐승이나 고향산천 같은 자연과의 헤어짐도 슬픈 일이지만, 하물며 사람들끼리의 헤어짐은 언제나 슬픈 일이다. 한쪽은 죽고 한쪽만 살아남아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는 사별(死別)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사람끼리 헤어지게 되는 생이별의 아픔을 맞을 때 어찌 눈물이 없을 것인가.

칼릴 지브란은 「눈물과 미소」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내 가슴의 슬픔을 저 많은 사람의 기쁨과 바꾸지 않으리라. 그리고 내 몸 구석구석에서 흐르는 슬픔이 웃음으로 바뀌는 것이라면 그런 눈물 또한 흘리지 않으리라. 나는 나의 인생이 눈물과 미소를 갖기를 바라네. 눈물은 내 가슴을 씻어주고 인생의 비밀과 감추어진 것들을 이해하게 하네." 

저녁이 다가오면 꽃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을 포옹하면서 꽃잎을 접고 잠든다. 아침이 오면 그녀는 입술을 열어 태양과 입맞춤을 나눈다. 한 송이 꽃의 삶이란 그리움과 아쉬움, 눈물과 미소의 연속이다. 바다와 강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된다. 구름은 바람을 만나고 눈물이 되어 바다로 들어가는 강물과 합류한다. 인간의 생애도 꽃의 생애도 구름의 생애도 만남과 이별, 그리고 눈물과 미소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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