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걸어 놓은 수평선을 접었지

접힌 자국마다 그늘진 절벽이 되는데

수직의 몸들이
경사면으로 기울어 쏟아지는 사람들

점선 안으로 돌이 날아오고
펼쳐진 사람들은 자국이 남고

짧은 봄날이 여러번 겹치면
깨진 꽃잎에도
종종 몸을 부딪치는

다친 사람들이
닫힌 사람들이

말없이 모서리에 닿아 있어

너무 투명해 뼈가 다 비치는
점선 밖을
걷는 사람들은 뒤돌아보겠지

숨죽이지 않고도 멀리 와버린 검은 하늘을

붙잡지도 못했는데
끌어안지도 못했는데
들쭉날쭉 모여 있다가

접힌 채로 뒤척이는 사람들
접고 나면 흐릿해지는 사람들

한번 달아나지도 못하고
한번 일어서지도 못하고

깃털 같이 쌓여가다
차곡차곡 접혀 사라지겠지
(고영숙 '사라지는 사람들')

만개한 벚꽃나무의 새  가지에서 돋아난 꽃들이 유독 싱그럽다. 비 오는 날의 축제는 이래저래 막걸리만 마시게 되더라는 후일담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축제한다고 좇아다니는 여유도 부럽고 아이처럼 뭐 얻어먹어볼 게 있을까 기웃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귀엽기까지 하다. 잔칫날 제일 신나는 건 늘 아이의 몫이었는데, 요즘은 연령대가 한층 높아져서 중장년층이 축제의 주객들인 것 같다. 

오래 된 벚꽃나무 주변에는 유독 차들과 식당이 많다. 도로가에 즐비하게 주차된 차량만으로도 꽃놀이 인파를 짐작케 한다. 꽃향을 압도하는 닭숙, 파전, 고기국수, 골뱅이 무침… 등 이러저러한 냄새들이 걸음걸이를 늦춘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왁지껄함마저 정겨운 건 나이가 든다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냥 좋은 봄날이다. 

4·3주간을 맞아 전시회 개막식과 참배 나들이에 참여하였다. 전시된 시를 감상하고 노래도 듣고, 경찰의인 문형순 묘도 참배하였다. 

1949년 모슬포경찰서장이었던 故문형순은 마을주민 100여명이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자수시킨 뒤 훈방해 목숨을 살렸다고 한다. 이듬해인 1950년 성산포경찰서장으로 발령났을 때는 군 당국의 예비검속자 총살 명령에 대해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한다고 맞선 의인으로 알려졌다. 거의 대부분의 마을에서 200여명 이상의 주민들이 끌려가 죽임을 당하던 시절, 유독 성산포에서만 희생자가 적은 이유는 문형순 경찰서장의 공이 크다. 명단에 오른 295명의 성산포 주민을 구하였으니 의인이라 불릴만도 하다.  

문형순 묘는 제주시 오등동에 위치한 평안도민회 공동묘지에 있었다. 잘 정비된 공동묘지에 오래 된 비석과 새로 만들어 세운 비석이 나란히 묘를 지키고 있었다. 공동참배를 마치고 술잔을 바치는데 묘한 감정이 흘렀다. 아마도 그 장소에서의 마지막 참배가 될 것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평안도에서 흘러와 제주에서 홀로 생을 마감한 그의 마지막이 너무 쓸쓸하게 느껴졌다. 당시의 경찰서장은 시쳇말로 한끗발 날리던 사람이었을텐데 권력의 입맛에 맞추지 못한 것이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했을 터이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일은 사라지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한 두려움의 반증일 것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술병을 들고 따르는 무리의 뒷모습에서 측은지심과 자기연민이 보인다. "다친 사람들이 닫힌 사람들"이 보인다. "접힌 채로 뒤척이는 사람들 접고 나면 흐릿해지는 사람들"이다. 느닷없이 사라져버린 것들을 생각하다보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것들 더 잘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 모두 사라질 것들이지만 지금의 감각, 감정만으로도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청각장애 프로 복서 케이코(기시이 유키노 역) 이야기를 다룬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보면 그냥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만 있고 싶어진다. 호텔의 메이드로 일해서 번 돈으로 복서로 데뷔는 했지만 삶이 그녀에게는 버겁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경기 준비를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체육관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체육관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케이코는 체육관이 사라짐과 동시에 자신도 복싱을 그만 두겠다고 한다. 두 사람 다 별 말이 없다. 그냥 서로의 삶을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물론 케이코는 다시 링 위로 돌아온다. 별 이유가 없다. 할 일을 하고 자신의 리듬과 감각을 신뢰하는 것뿐 삶의 별 방도나 의미는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Small, Slow But Steady'라고 한다. 작고 느리지만 꾸준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삶. 진부한 것 같지만 편안하고 믿음직스럽다. 가만 바라보다 보면, 창틀에 쌓인 먼지가 햇빛 속에 부유하는 게 보인다. 사라져가는 것들이다.

다행스러운 건 거기에 벽이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흘러감 속에 가만 바라봄, 이 봄날의 루틴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아주 작고 느리지만 꾸준히 제 할 일을 하면서 가보는 거다. 그러면 아프지만 더 크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76년 전 제주의 봄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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