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이양하 「신록예찬」

신록의 절정에 이른 듯 숲과 거리에는 온통 초록빛으로 뒤덮였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몸바꾸어가는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은 신비롭다. 산책하는 숲길에는 초록 물결이 출렁인다. 봄볕을 받고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나뭇잎은 약동하는 생명의 모습이다. 눈을 감아도 눈 바깥에서 봄이 일렁인다. 생명이란 어김이 없이 발호하듯 일어나 세상을 뒤엎는다. 

5월은 색의 파노라마이며 생명에게 절정의 경지다. 눈이 부시게 초록빛 광채를 내는 신록의 절정. 흔히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부른다. 왜 신록예찬이 나왔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 나왔는지 이 계절 숲으로 가보면 안다. 정말 푸르다 못해 눈이 부신다. 한동안 눈을 뗄 수 없고 그냥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물줄기같이 쏟아지는 햇볕, 푸른 하늘을 수놓는 금빛구름, 부드러운 바람과 풍성한 나뭇잎, 타는 듯이 붉은 꽃, 훈훈한 습기를 머금은 해풍이 쏴하고 푸른 녹음을 뒤덮고 있다. 오월은 모든 생명을 만들어 내는 계절, 천지에 활력을 넘치게 한다. 5월만치 아름다운 생기와 기운넘치는 자연을 볼 수 있는 달도 없을 것이다. 이런 느낌은 병들어 앓는 이들이 더 절감하게 될게다. 5월에는 초목 같은 생기를 회복하여, 기운차고 눈부신 인생을 살아보고 싶게 한다. 

유안진이 <산자를 위한 땅으로>에서 말한 대로, 괴테는 가을을 너무 사랑해서 자기 생일 조차 가을로 바꿔 버렸다지만, 5월엔 역시 5월이 제일 좋다고 생각된다. 5월에는 나무도 들도 냇물도 초록빛이며, 풀밭의 강아지까지도 초록풀 포기로 보인다. 독초조차 어여쁘고 기특하고 순수하게 보인다. 비가 와도, 볕이 나도 초록잎만 돋보인다. 초록 그 한 빛깔로만 세상을 물들여가는 초록의 독재와 독점이 더 없이 장하고 신선하고도 아름다워서, 누가 봐도 희망적이 되고 만다.

이런 감탄에서 우리 선인들은 5월을 생기복덕의 달로 여겼다. 그래서 일년 중 씨내리기에 가장 좋은 귀숙일이 5월에 많고 민속으로 전해지는 5월의 합방 길일은 다른 달보다 4∼6일이나 더 많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다. 좋은 날이 가장 많은 달도 5월이 아닌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 의미있는 날이 줄이어 있다. 우리 선인들은 이 좋은 초록잎의 5월을 유열 단양 유하 주양 포절이라고 다채롭게 불렀으니, 시대의 고금없이 신록의 5월은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때이다.

산과 들판에 신록이 찾아오면서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으면서 수양버들이 새순을 연신 뽐내고 있다. 녹음으로 치닫는 신록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신록이 있기에 녹음이 있고, 녹음이 있기에 단풍이 생긴다. 단풍이 있기에 앙상한 가지가 보여 주는 설경이 있다. 세월의 흐름은 신록을 만들고 녹음과 단풍을 만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순환은 자연의 이치이자 인생 흐름의 기본원리다. 인간의 힘으로 마음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지만 아쉽게도 보낼 수밖에 없는 신록이다. 이양하 선생은 <신록예찬>에서 이렇게 신록의 의미를 전한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신록이 가득한 5월에는 꽃도 피고 바람도 살랑인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은 1년 중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이다. 산과 들은 그 푸르름을 더해 눈이 부실 정도다. 꽃 진 자리에 움튼 연두 잎이 어느새 신록으로 채워져 온 세상이 푸릇푸릇 빛난다. 하얀색에서 노란색까지 풀꽃들의 향연이 끝난 산야는 온통 초록 일색이다.

5월은 색 잔치의 계절이다. 눈에 보이는 건 초록빛이다. 풀잎도 예쁘고 모든 나뭇잎도 예쁘다. 그렇다고 초록이 다 같은 초록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의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진초록도 있고 연초록도 있고 초록 계통의 색이 여러 가지다. 그 속에는 각기 다른 생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모두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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