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김지하 「애린」
산책길 어느 집 담장에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 모습을 오랫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화려한 꽃잎과 우아한 자태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름의 대표적인 꽃이다. 여름이 오면 어느새 능소화가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주황빛 꽃잎을 피우며 주변을 환하게 밝혀준다.
능소화는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온 꽃이다. 능소화가 담장을 타고 높이 자라는 특징을 잘 나타내주듯이 한자로 '凌霄花',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능소화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담겨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소녀가 살았는데,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착한 마음을 가진 아가씨였다. 어느 날,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신선은 다시 하늘로 돌아가야 했고, 소녀는 그를 기다리며 매일매일 눈물을 흘리다가 결국 꽃으로 변했고 그 꽃이 바로 능소화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능소화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능소화 꽃잎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소녀의 눈물 같기도 하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서 갈수록 상실되어가고 있다. 특히나 그 불꽃같은 주황색 꽃잎은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잘 어울리는 듯하다. 몸도 마음도 어디 딱히 둘 곳이 없을 때, 그래서 삶이 참 외롭고 쓸쓸하다 싶을 때가 많다. 슬픔은 슬픔으로, 외로움은 외로움으로. 기다림은 기다림으로 우리는 누군가와 무언가를 아깝게 여겨야 하지만 그러한 마음이 사라져 가고 있다.
능소화에 담긴 사랑과 슬픔을 보고 있으면, 김지하 시인이 사용한 '애린(愛悋)'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아깝게 여김'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인이 이런 의미로 이 단어를 썼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물을 아깝게 여기고 사랑하라는 의미는 분명한 듯하다.
김지하의 시집 「애린」은 우리 가슴마다에 담긴 아린 마음들을 노래하고 있기에 읽는 독자도 덩달아 마음이 아려온다. 이 시집 「간행에 붙여」에서 시인은 말한다. "모든 죽어간 것, 죽어서도 살아 떠도는 것, 살아서도 죽어 고통 받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한 진혼곡이라고나 할까. 안타깝고 한스럽고 애련스럽고 애잔하며 안스러운 마음이야 모든 사람에게, 나에게, 너에게, 풀벌레 나무 바람 능금과 복사꽃, 나아가 똥 속에마저 산 것 속에는 언제나 살아 있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매순간 죽어가며 매순간 태어나는 것을(···) 아직도 바람은 서쪽에서 불고, 아직도 우리는 그 바람결에 따라 우줄우줄 춤추는 허수아비 신세, 허나 뼈대마저 없으랴. 바람에 시달리는 그 뼈대가 울부짖는 소리 그것이 애린인 것을."
능소화는 담장밖에 심는다고 한다. 독성을 포함하고 있어서 자칫 눈을 멀게 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눈멀고, 세상에 눈멀고 살아가는 눈먼 꽃, 그러다가 능소화는 한여름에 저렇게 찬란하게 피어나 세상을 밝히고자 하는지 모른다. 차라리 눈이라도 멀어버리면 이 추악하고 너절한 세상을 덜 보고 살 것이 아닌가.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는 누군가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함께 애도하는 마음을 가질 때가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는 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비극과 고통을 함께 슬퍼하지 못하고 있다. 지구의 한 켠에서는 전쟁과 기아로 울고 있지만 우리는 더 큰 풍요와 욕망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 곁에 희미한 등불처럼 왔다 간 누군가의 영혼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간이역에서 사라진 시간의 의미를, 오랜 슬픔과 고통 속에서 이루어야 할 깨달음을 망각한 채 사람들은 능소화 사랑의 의미를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애도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슬퍼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서 사라지고, 아쉬운 시간이 쉼없이 지나가지만, 이들은 모두 우리의 영혼 속에서 함께 살아 숨 쉬지 못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의 일들은 단순히 잊고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끌어안을 때 성장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능소화에 머물렀던 눈빛들을 더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 물기 젖은 두 손으로 능소화 꽃잎을 만져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