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M. 하이데거「예술 작품의 근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신발이다. 어느 집 현관에서는 신발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지만, 신발이 이리저리 흐트러져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집도 있다. 어릴 적에는 신발의 모습을 보며 주인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신발을 볼 때면 아버지가 집에 있는지 아니면 출타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신발을 문학 작품으로 그려낸 작가와 시인들은 많지만, 그림으로 그려낸 화가들도 많다. 신발을 그려낸 예술가로 빈센트 반 고흐에 견줄만한 사람은 없다. 고흐는 구두, 해바라기, 그리고 의자와 같은 사물을 즐겨 그렸던 화가이다. 고흐는 정물화를 그릴 때조차도 마치 사물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색조와 실루엣을 담곤 했다.
고흐가 그린 구두에서 그것을 신었던 주인의 얼굴은 직접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주인의 부재' 때문에 이 구두들은 신비로운 매력을 뿜어낸다. 신발이 주는 느낌과 분위기를 통해 우리는 그림 저편에 있는 신발 주인의 삶을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고흐가 그린 구두는 '정물화'라기보다는 '초상화' 같은 느낌을 준다. 얼굴을 모델로 누군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모델로 누군가의 삶을 그리는 듯한 느낌, 바로 그 친밀함과 신비로움 때문에 고흐의 구두는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자아낸다.
그래서인지 고흐의 그림 '구두 한 켤레'는 많은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의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보잘것없는 구두 한 짝이 그렇게 예술적 가치를 부여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은 간단한 듯 복잡한 철학적, 미술사적 논쟁의 대상이 되며 많은 해석을 낳기까지 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고흐가 그린 구두가 노동을 통해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농부의 고된 생의 흔적이 농축된 사물이라고 보았다.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근원(Der Ursprung des Kunstwerks)」이라는 글에서 고흐의 구두 그림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해석했다.
닳고 닳아 발가락이 삐져나올 것만 같은 신발의 안쪽, 그 어두운 틈새 안에 농부의 힘겨운 삶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고흐가 그린 신발은 한 존재의 슬픔과 고뇌를 보여주고 있다. 신발의 묵직한 무게감 속에는,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일직선으로 뻗은 밭고랑 사이를 묵묵히 걸어가는 농부의 힘든 삶의 걸음걸이가 담겨 있다.
하이데거는 고흐가 '눈에 보이는 구두'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구두의 주인'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이 구두의 주인이 농부라고 가정하고, 그 구두를 신고 올해도 무사히 대지로부터 곡식을 얻어낼 수 있는지 근심하고 있다고 보았다. "신발이라는 존재자를 통해서 농촌 아낙네의 삶이라는 존재의 드러남에 예술의 본질이 있다."고 하여 고흐의 신발 그림은 더욱 유명해졌다.
고흐가 동생 태오와 주고받은 편지에는 신발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타난다. 고흐는 밀레의 작품을 보았을 때의 체험을 동생에게 전하는데, 어디선가 다음과 같은 성서의 한 구절을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발에서 네 신을 벗으라."(구약성경 「출애굽기」 3장 5절에서).
그러면서 고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욕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고흐는 삶의 긴 여정 속에서 지친 영혼이며, 피로로 너덜거리는 육체를 온전히 보듬고 지탱해 준 신발의 존재를 보면서, '너, 참 고생 많았다. 어찌 그렇게도 너는 내 삶과 같으냐'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구두 한 켤레'에는 너무 오래 신어서 다 해어져버린 신발의 안쪽 어두운 틈새로부터 밭일을 나선 고단한 시골 노동자의 발걸음이 엿보인다. 신발 바닥으로는 저물어가는 들길의 고독함이 밀려온다. 이 작품은 고단한 삶을 신발에 투영시킨 고흐의 자화상이며 "신발의 주인은 고흐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있다.
현관 입구에 놓인 우리들의 신발에도 고단한 삶의 땀과 고뇌가 묻어 있다. 내 신발에는 무엇이 묻어 있는가. 누구와 함께 어느 장소를 걸었던 흔적이 묻어 있을까. 신발이 지나온 내력에는 내 삶의 흔적과 발자취가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신발은 그 주인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는 가장 소중한 물건 임에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