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물속에서 생명은 탄생하고 물에 의해서 양육되고 성장하게 된다. 물은 생명 활동을 위해서 필수적일 뿐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생산활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고, 세계 4대 문명이 모두 큰 강 유역에서 일어나 발전해 온 것을 보면 이런 사실은 잘 알 수 있다. 

물은 강·호수·바다 등 다양하게 그 모습을 바꿔가며,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연결하고 있다. 물은 정해진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담는 그릇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그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찍이 노자(老子)는 "상선(上善)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말하면서, "물은 도(道)에 가깝다"라고 했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물을 덕(德)으로 비유하면서 그 철학적 도덕적 의미에 주목하였다.

반면에 서양에서도 고대 그리스 밀레토스의 철인 탈레스는 만물의 시원을 물에서 찾았다. 탈레스는 이 세계를 유동하는 물처럼 보았다. 파도가 갈라지고 태풍이 일어나는 바다에서처럼 물은 끊임없이 유동하고 변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의 불가시적인 에너지나 힘은 유체가 되어 만물에 침투하고, 이것이 세계와 인간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근대 이래 사람들은 지나치게 물을 남용하고 도시를 개발하면서 물을 함부로 다루었다. 언제나 환경이 사람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물이 오염되고 모자라면서 삶의 윤기가 없고 정서가 메말라 가고 있다. 더 나아가 지금의 현대적 삶의 환경에는 생명력이 없다. 그만큼 우리는 물에 흠뻑 젖은 삶의 모습을 더욱 갈구하게 된다. 

물과 인간, 물과 세상의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물에 대한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이해도 달라지게 되었다. 물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주로 생물학적이고 자연과학적 현상으로서 살펴져 왔지만, 인문학의 관점이나 예술을 비롯한 인간의 정신 활동과는 그다지 밀접한 관계를 맺지 못해왔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바슐라르는 「물과 꿈」에서, 인간은 자기의 심저(深底)에 흐르는 물의 운명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매 순간마다 끊임없이 죽음으로 붕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은 항상 흐르고 떨어지며 마침내는 죽음으로 끝난다. 인간에게서 물의 죽음은 일상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따라서 바슐라르에 의하면, 물의 이미지를 전개하는 것은 인간의 운명과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거와 같은 것이 된다.

시인이자 선승이며 명상가인 틱낫한(釋一行)은 자신의 글에서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물의 비유를 보이고 있다. "자신을 바다 수면에 일렁이는 한 굽이의 물결로 상상해 보라. 그대가 창조되는 모습을 지켜보라. 그대는 수면으로 떠올라, 잠시 머물다가, 바다로 돌아간다. 어느 시점엔가 끝에 이른다는 것을 알지만, 그대 존재의 근거인 물을 어루만지는 방법을 안다면 모든 어려움은 사라질 것이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한 굽이 물결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물과 함께 살 수 없을 때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고 말한다.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은 물의 '흐름'과 '순환'을 이야기한다. 물은 언제나 움직이며 순환하는 과정을 이루기 때문에, 이것을 생명의 순환으로의 '물의 순환'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물의 순환은 말 그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시작과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이 흐르지 못하고 순환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 우주상의 모든 존재가 살아있기를 멈추는 거와 같다. 물은 우리의 생명이며 존재의 근원이다. 모든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물 한 방울을 더욱 소중하게 여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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