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바슐라르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
흙은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가장 소중한 연결고리이다. 흙은 식물과 동물의 서식지이며 인간은 흙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자연의 뿌리가 되는 흙은 인간과 세상의 근본을 이루게 되는 터전이다.
태초에 조물주는 인간을 흙으로 빚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고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다. 흙으로 빚어져 흙을 경작하고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모든 것은 흙으로 시작하여 흙으로 끝난다고 하겠다.
이런 사상은 동서양에서 다르지 않다. 흙은 존재의 고향이며 세계 이해의 처음과 끝으로 여겨져 왔다. 물, 불, 바람, 흙으로 구성되는 우주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인 흙은 신이 인간을 만든 최초의 도구이며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의 의미가 있다.
동양 사상에서는 우주 만물의 변화를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의 다섯 가지 기운(五行)으로 압축해 설명하려고 했다. 오행은 음양(陰陽)의 바탕을 이루면서 모든 원소가 존재하는 기반이 된다.
서양에서도 가스통 바슐라르의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에 의하면, 책의 제목에서 '대지'로 옮긴 프랑스어 'la terre'는 대지 · 땅 · 육지 · 토양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고대 과학철학에서의 4원소론 중 하나인 '흙'을 가리킨다. 이러한 흙의 이미지는 나무, 꽃, 산, 숲, 들판과 연관을 가지게 된다. 또한 공기와 바람과 함께 자신의 존재를 고뇌하고 인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연의 본질적인 뿌리를 두는 것은 '흙'이 있는 곳, '땅'이다. 땅에서는 다양한 자연의 생명체가 자라난다. 나무와 꽃과 같은 식물과 미생물, 들판과 대지에서 살아가는 여러 동물이 어우러져 자연 생태계를 형성하게 된다. 흙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나무처럼 흙 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는 무수히 많다. 숲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처럼 동물들도 흙과 함께 살아가면서 대지와 들판을 뛰어다닌다.
숲에서 살아가는 나무와 들판을 뛰어다니는 동물과 인간의 삶은 모두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그들은 각자 혼자만의 삶이 아니며 자연이라는 공간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만물과 함께 살아가야 할 자연의 일원이다. 우리가 꿈꾸는 삶은 흙에 터전을 둔 나무처럼 자연과 함께하는 공생의 삶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흙과 땅이 사라져 가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과 발전에 힘입어 삶의 터전이 없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현대적 삶의 조건에서는 문명이 시작된 이래 자연과 인간이 가장 근원적이고 심각한 위기에 당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흙이 없어지고 함께 살아가야 할 땅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인간적으로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땅이 없어져도 과학기술이 또 다른 생존을 가능케 하리라고 여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흙과 땅이 없어져 간다는 것은 숨 쉴 생명의 공간이 없어져 가는 거와 다르지 않다.
오늘도 어디에선가 파헤쳐져 죽어가는 흙은 흙의 비애로써 인간의 비애를 부추긴다. 시골 땅 산비탈의 붉은 흙은 봄볕 속에서 부풀어 생명을 발산한다. 흙의 붉은색은 봄이 펼쳐내는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신선하고 생생하다. 이 붉고 생생한 흙은 그 땅에 코를 박고 일하는 사람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의 생명을 존재케 한다.
생동하는 흙 속에서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봄은 활짝 기지개를 켠다. 모든 생명이 흙과 함께 하나가 되어 어울려 살아야 우리의 땅은 축복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종국에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일진 대, 어이하여 사람들은 흙의 경건함을 알지 못하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