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몽골에서 눈 소식이 도착했다. 마당의 감이 아직 그대로 달려있는데, 눈소식은 조금 당황스럽다. 모든 것은 제철이어야 제맛인데 말이다. 하기야 제철이란 개념도 지역, 경험에 따라 다른 것이어서 약간의 편견도 있는 셈이다. 어쨌든 눈은 내 경험으론 12월의 눈이 제격이다. 변화무쌍하게 달라진 계절감각에 적응하기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보다 변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기에 눈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다. 지금은 가을을 제대로 느낄 시간이다. 

예전에 여행 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몽골에서는 숲이 귀한 풍경이라고 한다. 워낙 너른 땅이라 너른 들판은 흔하게 볼 수 있어도 숲은 귀하다는 것이다. 기후 탓도 있지만 몽골에도 개발 바람이 불어 적게나마 형성된 숲의 나무들은 다 베어져 사라지고 있단다. 그래서 가장 멋진 풍경 사진은 숲의 고목을 찍은 사진이며 피서도 숲으로 가는 것이 최상의 피서라는 것이다. 호수는 그 다음이다. 그곳은 호수가 바다처럼 넒어서 마치 바다로 피서를 간 것 같은 기분이 들만도 하다. 하기야 바다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바다나 호수나 같은 감각으로 느껴지는 장소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숲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내 안으로 들어섰다. 누군가에게 이 얘길 했더니, "시가 나오겠구만"이라며 한 번 시도해보라는 눈짓을 하였다. 숲에 가면 시가 나온다는 말은 어떤 맥락인지 도통 모르겠다. 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에 살면서 숲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숲이나 호수나 거기가 거기다. 그가 '월든'에서 이렇게 쓴 구절이 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배울 수 있을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중에서)

숲에 간다고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직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메너리즘에 빠진 내 삶의 자리들을 직면해야 할 것 같은 불안은 낯선 것으로의 여행을 부추기고 있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참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은 너무 거창한 것인가? 

소나무 숲엔 누군가 있다어디서나 보이라고, 먼데서도 들으라고소나무 숲은 횃불처럼 타오르고 함성처럼 흔들린다이 땅에서 나 죄 없이 죽은 사람들과다치고 서러운 혼들 모두 들어오라고몸을 열어놓는 것이다그렇지 않고서야 바람 부는 날저렇게 안 우는 것처럼 울겠는가사람들은 살다 모두 소나무 숲으로 갔으므로새로 오는 아이들과 먼 조상들까지거기서 다 만나는 것 같다그래서 우리나라 밥 짓는 연기들은거기 모였다가 서운하게 흩어지고소나무 숲에는 누군가 있다저물어 불 켜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그렇지 않고서야 날마다저렇게 먼데만 바라보겠는가 (이상국 시, 「소나무숲에는」 부분)

소나무숲에는 무엇이 있을까? "안 우는 것처럼 우는" 누군가 있다는데, 그것은 누구이며 무엇일까? "밥 짓는 연기들은 거기 모였다가 서운하게 흩어지"며,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는데 아직 오지 않은 것은 무엇이며 그걸 누가 기다린다는 말인가? 시 한편이 오롯이 스며들기보다는 온통 물음표로 남는다. 숲으로 직접 가서 그 물음에 답해보라는 듯이. 

다큐멘터리 영화 '댄서'는 천재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에 관한 이야기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의 작품 『단순한 열정』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다. 열아홉살의 나이에 영국 로열발레단 최연소 수석 무용수에 발탁될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은 그도 반항아, 배드보이, 발레계의 제임스 딘이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로 방황의 시간을 가졌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그의 방황은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외로움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그의 기질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시골출신의 천재적 발레리나 세르게이 폴루닌은 너무 이른 나이에 가난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받았다. 자신의 학비를 대기 위해 아버지와 할머니는 이주노동자로 살아야 했고, 어머니는 치밀한 관리를 통해 헐리우드를 방불케 하는 예술경쟁에서 늘 최고여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듯 했다. 결국 로열발레단 수석 무용수라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으나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며 돌연 탈단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은 "자기대로 살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세상이 요구하는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부터 내가 쓰고 싶은 가면을 쓰며 살고 싶다는 선언인 것이다. 가면은 어차피 벗을 수 없는 것. 그렇다면 내가 쓰고 싶은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 나에 가까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문득, 찾아오는 물음의 답은 산 위에서 마시는 생수 같다. 바람이 물어다 주는 물음을 야금야금 새기며, 첫눈이 오는 날엔 그 물음의 답이 눈길 위에 쓰여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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