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매개체, 음악
제주 소재 노래 들으며 가을 정취 만끽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가사 한 줄에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매년 라디오나 미디어에서 울려퍼지는 가을 노래의 대명사가 됐다.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작사한 노래는 그곳에 대한 이미지도 새롭게 입힌다.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가 대표적이다. 이 노래로 여수가 '한번 쯤 찾고 싶은 낭만적인 도시'로 각인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도시로 거듭났다.

이색적인 자연과 특유의 분위기를 품고 있는 제주를 소재로 한 노래도 적잖다. 선선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가을 한복판에서 '제주 플리'를 들으며 바다와 산, 억새군락을 천천히 둘러보자.

금오름 제민일보 자료사진
금오름 제민일보 자료사진

# 제주의 바람을 선율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제주4·3을 주제로 한 최근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할 때, 소설 배경이 되는 제주를 떠올리기 위해 조동익의 '룰라비(Lullaby)'를 들었다고 했다. 한강 작가는 책의 출판사인 문학동네 인터뷰에서 "제주 자연 소리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며 "이 음반을 틀어놓으면 제주에 간 것처럼 느껴졌다"고 전했다.

'뮤지션들의 뮤지션'으로 불리는 '제주도민' 조동익이 2020년 26년 만에 발매한 정규 음반에 수록됐으며, 7분 20초 가량 이어지는 가사 없는 곡이다. 바람 소리와 피아노 선율이 겹겹이 화음을 쌓는다. 노을빛 감도는 바람부는 억새밭, 짙은 어둠이 깔린 바닷가를 떠올릴 수 있는 곡이다. 제주 대표적인 억새 명소는 어음리 억새군락지와 새별오름, 산굼부리, 닭머르해안길 등이 있다. 제주 바다는 각기 다른 매력이 있으니 취향껏 골라가면 된다.

# 가사 따라 식도락 여행

이름 모를 포구 언저리 해녀촌 창가에 앉아 먹는 다금바리와 자리물회, 주인 없는 카페에서의 감귤차 한잔, 깅이('게' 제주 방언)죽이나 성게미역국, 각재기탕으로 해장하고 먹는 옥돔구이에 고등어조림, 배지근한 고기국수까지. 나무자전거의 '꿈꾸는 제주도' 가사에 제주 향토음식이 가득하다. 노래를 감상하고 있으면 제주의 밥상이 그려진다.

제주 출신 가수 김형섭씨가 속한 포크 듀오 나무자전거가 2016년 발매한 곡이다. 그룹의 전신은 우리에게 '너에게 난 나에게 넌'으로 유명한 자전거 탄 풍경이다. 가사 속 향토 음식만 따라다녀도 제주를 만끽할 수 있는 식도락 여행 코스가 완성된다. 그야말로 '꿈꾸는 제주도 여행'인 셈이다.

# 제주의 소중한 자산

에브리싱글데이의 '언제부턴가'는 제주 등 국내 출신 뮤지션들이 세계무형문화유산인 제주해녀를 조명하고자 제작한 앨범 '해녀, 이름을 잇다'에 포함됐다. 해녀를 주제로는 처음으로 발매된 것이다. 제주 출신 강아솔의 '물의 아이'부터 한소현의 '해녀의 꿈', 정성하의 기타버전 '해녀의 꿈' 등 다양한 장르로 제주해녀를 소개한다. 4면이 바다인 섬 제주의 해안도로를 지날 때 푸른빛 바다를 보며 그 속에서 숨비소리를 내뿜고 있을 해녀들을 떠올릴 수 있다.

제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과일은 '귤'을 소재로 한 노래도 있다. '재주가 많고 제주에 산다'고 이름 붙인 밴드 재주소년이 2003년 세상에 꺼낸 노래 '귤'이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 학교 급식에 나온 귤을 보고 지난 겨울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가을~겨울이 제철인 감귤 출하 소식을 접하면 한해를 보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잊혀진 추억 속 노래를 문득 듣게 된다면, 그 노래를 감상했던 지난 날로 되돌아간다. 그 날의 분위기와 날씨, 함께했던 사람들…추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던 풍경이 선명해진다. 음악은 우리의 기억과 감정을 자극해 특정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다. 제주를 만끽하며 들었던 노래들을 우연히 마주한다면, 다시금 제주를 찾게 되는 좋은 명분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김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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