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지넷 윈터슨 「무게: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가장 비운의 인물은 프로메테우스와 아틀라스가 아닌가 한다. 아틀라스의 아버지는 이아페토스이며, 어머니는 오케아노스의 딸인 클리메네이다. 그는 티탄 신족과 올림피아 신들과의 싸움에서 티탄 신족의 편을 들었고, 그로 인해 제우스로부터 평생 지구의 서쪽 끝에서 손과 머리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으라는 형벌을 받았다.

아틀라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와는 형제간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불쌍히 여긴 나머지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고 고행의 삶을 살아가게 되지만, 신과 인간, 문명과 야만, 혼돈과 질서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 혁명가였다. 말하자면 프로메테우스는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지혜의 화신이며 변화와 진보의 상징이다. 상상의 비약을 무릅쓰고, 짐작건대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면서 동시에 글과 언어를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준 불을 통하여 인간이 지혜를 깨우치고 좋은 글을 읽고 쓰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이름처럼 '선지자 先知者'임에 틀림없다. 

반면 아틀라스는 세상과 인생의 짐을 송두리째 안고 뒤늦게야 그 의미를 깨닫는 자이다. 조금도 쉬지 못하고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는 아틀라스는 한편으로 힘과 인내를 상징하는 고역의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고통과 슬픔을 상징하는 '짐 진 자'가 되었다. 프로메테우스와 아틀라스 두 형제는 모두 신의 명령에 반대하며 자기 생각을 주장하다가 박해받는 자들이다.  

삶에서든 문학에서든 선지자는 항상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다. 새로운 것을 통찰하거나 각성하지 못하고 기존의 것에 안주해서는 새로운 삶과 문학에 이를 수 없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 항거하면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거와 같이 우리에게 순응과 안주가 아닌 전복과 위반의 삶과 문학을 가르친다. 새로운 삶에 대한 선취의 열망을 불태우지 못한다면 문학이 무슨 소용일 것인가. 자본과 기술이 지배하는 이 척박하고 암울한 시대에 프로메테우스가 던져준 불을 통하여 이 시대와 삶의 어둠을 밝히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아틀라스처럼 이 세상에서 '짐 진 자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문학은 무엇인가. 

아틀라스는 지금도 짐 잔 자의 모습으로 산이 되어 남아 있다. 아틀라스산맥(Atlas Mts.)은 아프리카 북서부에 동서로 뻗어 있다. 최고봉 투브칼산(4,165m)은 모로코와 알제리에 걸쳐 있고 북쪽은 지중해, 남쪽은 사하라 사막에 접한다. 산맥은 구조상 복잡하며, 모로코 지방의 산맥과 동부의 해안산맥으로 크게 구별된다. 예로부터 이 산맥은 유럽인에게 잘 알려졌으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틀라스의 고향이라고 불린다. 신화적인 의미에서 산은 세상의 중심을 상징한다. 그것은 땅속의 어둠을 물리치고 지상으로 수직적으로 솟아오른 자신의 힘과 권능을 주장하며 홀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모든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면서 이 세상에 서 있게 된다.   

아틀라스는 산이지만 동시에 바다가 되어 있다. 대서양은 영어로 Atlantic Ocean으로 아틀라스부터 유래한 이름이다. 대서양은 아틀라스의 바다를 의미한다. 바다는 무한을 동경한다. 끝없이 펼쳐진 세상과 맞서 출렁이는 바다는 곧 아틀라스의 모습이기도 하다. 짐 진 자의 고통과 업보가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우면 산과 바다가 되어 남았을까.

언젠가 아프리카 북단을 여행하던 중, 모로코와 사하라 사막을 지난 적이 있다. 뜨거운 모래의 낮, 사막의 깊고 푸른 밤, 그 낮과 밤을 관통하면서 나는 아틀라스의 모습을 보았다. 사하라는 아랍어로 '사막'이라는 의미이다. 그 거대한 사하라가 모로코와 알제리 국경 근처에 고요히 존재한다. 문명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사막에 대한 끝없는 동경을 지니고 있다. 

인생은 마치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기에 그 멀고 긴 사하라 사막을 바라보면서 내가 서 있는 인생과 세상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사막은 텅 비어 있으면서 꽉 차 있다. 사막에서는 모든 것이 떠나고 돌아온다. 다데스 협곡과 토드라 고지를 거쳐 드디어 거대한 사하라의 모래 언덕 에르그셰비(Erg Chebbi)에 당도했다. 한때는 모든 것으로 가득 차 있던 사막이 이제 모든 것이 떠난 텅 빈 사막, 한때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던 사막이 이제는 이별만이 남은 사막에서 아틀라스는 절규하고 있었다.

아틀라스처럼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어둠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짐 진 자들이며 고통의 업보에 시달리는 자들이다. 나는 아틀라스산맥을 건너 사하라를 관통하면서 묻고 또 물었다. 이 힘들고 아득한 세상과 인생의 짐을 어찌할 것인가. 또한 이 세상과 인생을 위해 문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세상과 인생의 짐은 어찌 이리 고달프고 무거운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이 절망적 삶에서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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