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젖은 억새가 붉은 잎을 떨구고 세상의 울분을 저어하고 있다. 세상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눈 앞에서 일어났을 때, 몸과 마음은 얼어붙고 만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은 사방으로 촉을 세우고 나와 닮은 이를 찾아 나서게 한다. 그렇게 거리는 공포의 몸들이 엉겨붙어 대열을 완성하고 한 목소리로 외친다. 더 이상의 전쟁은 원치 않는다고, 폭력은 애초부터 용서할 수 없다고. 

공포의 10여 일이 지났다. 폭풍이 지나갔다고 하나 그 여진은 남아 있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칼바람을 기억하며 꽁꽁 싸매게 한다. 오지 않은 일까지 걱정하게 한다. 잠재적 공포는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공포도 같이 태어난 것처럼 꿈에서 자주 괴뢰군이 쳐들어온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괴뢰군이 왜 꿈에서 자주 쳐들어오는지, 대한민국에 태어난 자의 근원적 슬픔이다. 어찌나 생생하게 꿈을 꾸었는지 몸은 젖어 있고 눈물이 흐른 자국에는 얼음꽃이 피었다. 

거리 한가운데서 얼굴을 가리고 울어보았지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선 채로 기다렸어, 그득 차오르기를

모르겠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는지
거리 거리, 골목 골목으로 흘러갔는지

누군가 내 몸을 두드렸다면 놀랐을 거야
누군가 귀 기울였다면 놀랐을 거야
검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
깊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
둥글게
더 둥글게
파문이 번졌을 테니까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알 수 없었어,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니

거리 한가운데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
그렇게 영원히 죽었어, 내 가슴에서 당신은

거리 한가운데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
그렇게 다시 깨어났어, 내 가슴에서 생명은
(한강의 시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전문)

아주 오래 전에, 최루탄이 터지면서 거리에 모여 있던 군중들이 흩어지고 골목 담을 뛰어 넘다가 무릎이 까졌으나 아무 감각이 없었던 한 여대생을 생각한다. 눈물조차 호사였을 그 순간에 눈은 무릎 위로 내려와서 붉은 눈물을 흘렸다. 그제서야 살아있음을 자각한 그녀는 무엇이 두려웠는지를 생각한다. 아무 생각없이 잠자리에 든 부모가 걱정됐을까?막무가내로 휘두르는 몽둥이매가 두려웠을까? 물론 그 둘 다 였을테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건 "넌 누구야?" 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없음이 더 두려웠던 건 아닐까?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 흑백사진을 떠올리며 그때의 두려움과 현재의 두려움이 겹치는 이유를 트라우마라는 말로 대체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 '디-데이 프라이데이'에서 고교야구 선수 지태의 팬인 은주는 고교야구대회 선발전을 앞두고 응원 플랜카드를 직접 만들고 대회 날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하필이면 지태의 시합날이 이모부 제삿날이다. 이모부는 1980년 광주 민주항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은주는 당연히 지태 응원을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집안의 공기는 은주를 이기주의자로 내몬다. '이런 날에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점 치는 노인과 변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시 「그날」 부분) 

2024년 12월 3일은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내란이니 항쟁이니 혁명이니 하는 이름 붙이기로 숱한 논쟁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 모든 걸 떠나서 공포를 떨치고 거리로 나선 발걸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민첩하고 단단하고 화려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률적인 구호로 일렬대오를 강조했던 과거의 거리 시위가 있었다면 이번엔 총천연색 응원봉이 거리를 물들이며 그야말로 어둠에 맞선 빛의 향연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를 응원하듯 시민들은 민주와 정의를 응원했다.

12월 3일 밤, 잠자리에 들 시간에 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모든 것은 태연했으나 총구 앞에 선 이들의 심장은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그걸 지켜보는 이들의 심장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옆에 있는 이를 꼬집었다고 한다. 이게 실화인가 싶어서. 영화같은 일이 영화보다 더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3D안경 너머로 총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그날의 기억,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연말에, 즐거운 만남을 계획했던 사람들이 많이 갈등하며 거리로 나갔다. 결국, 거리에서 즐거운 만남은 이어졌고 오랜만에 거리에서 만난 이들의 인연도 이어졌다. 축제가 된 것이다. 아직 사랑할 수 있음에 기뻐했을 것이다. "아마도 사랑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은 우리가 정상임을 보여준다. 사랑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한 안토체홉의 말처럼 행동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었다. 서로의 어깨에 의지할 수 있는 취약성과 의존성에 기대면서 거리의 사랑은 들불처럼 피어올랐다. 사랑은 고통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거리는 조용한 열정으로 들끓고 있다. 2025년으로 건너가는 겨울은 참 뜨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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