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의 바다에 대여섯 척의 배들이 멀리 나가지 못하고 맴돌고 있다. 저 너머의 풍랑을 막아서듯 혹은 포위당한 듯 몇 시간째 그 자리인 것이다. 고등어잡이 배 침몰 사고가 두어 달 지난 후라 침묵의 배가 맞닥뜨려야 할 숙명은 칼바람만큼이나 맵다. 배를 둘러싼 포말이 아스라이 떨리고 있다. 막대 위 작은 깃발만이 조급한 마음으로 여기 함께 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한 달여 넘게 시름시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 경제에 까막눈처럼 살던 사람들도 탄핵이니 불소추 특권이니 돈맥경화와 같은 용어에 익숙해지고 있다. 원래 가족이니까 몰라도 아는 것처럼 살다가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친 사건 사고로 '원래 그런 놈이었어'라며 새삼스레 되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상식이 순식간에 의심을 받는 형국이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 의미 없이 걸어온 발자국이 모여 역사가 된 거라면 눈과 같이 사라졌다고 해도 내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부끄러움은 있으나 이별할 것들은 뒤돌아보지 말고 과감히 이별해야 한다. 그래야 가볍게 눈길을 걸을 수 있으니까.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온 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온 길도 간 길도 없이
깊은 눈발 속으로 지워진 사랑
떠돌다 온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가 맺혀서
이제는 기억조차 먼 빛으로 발이 묶인다
내게로 오는 모든 길이 문을 닫는다
귀를 막으면 종소리 같은
결별의 예감 한 잎
살아서 바라보지 못할 푸른 눈시울
살아서 지은 무덤 위에
내 이름 위에
아니 아니, 아프게 눈이 내린다
참았던 뉘우침처럼 눈이 내린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사나흘 눈 감고 젖은 눈이 내린다
(류근 시 「폭설」 전문)

참았던 뉘우침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폭설만큼 너무 많은 무지와 부끄러움이 싸여 그 안에 숨고 싶어진다. 숨었다고 그 실체가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되겠지 하는 빈약한 서사에 변명이 싸여 비합리적 신념이 돼버렸는지도 모른다. 무모한 사건의 주인공들은 주술처럼 박힌 비합리적 신념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눈(雪)으로 덮으면 눈(目)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참 가여운 마법이다. 

디스토피아 액션 스릴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 '시빌 워'에 유독 눈길이 간 이유를 돌이켜보면 무의식적으로 감지되는 불안에 따른 바라보는 눈(目)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상이 수상하기도 하거니와 이를 추적하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막연한 믿음인 것이다. 영화 '시빌 워'는 미국의 내전을 가상으로 그린 영화다. "우린 이제 승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세간에선 일찌감치 군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께서 미국과 국민 여러분을 축복하시길"이라고 카메라 앞에서 연설하는 미국 대통령(닉 오퍼먼 역). 그 순간에도 도심은 불타오르고 있고 총성이 난무하며 피 튀기는 듯 긴박한 소음 속에서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카메라 뒤에 숨은 대통령의 녹화 영상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권위주의 대통령은 FBI를 해체 시켰으며 시민을 향한 공습을 허락했다. 이를 종군기자 리(키얼스틴 던스트 역)가 서늘하게 추적한다. 아무리 가상이라고 하지만 어디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듯한 연출이다. 

"그의 궁전은 막사요, 그의 사냥막은 법정이다. 계엄령이 발효중인 것이다.

그러므로 똑똑히 들어라. 내가 나타나면 비장미 따위는 자취를 감춘다. 행복을 갈구하는 저 우스꽝스러운 초조감, 연인들 특유의 저 얼빠진 낯짝, 풍경을 음미하는 이기적 취미, 버르장머리 없는 풍자같은 것들은 물론 비장미를 엄습한다. 그 대신에 나는 조직을 제공하겠다. 처음에는 다소 거북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결국 탁월한 조직이 돼먹지 않은 비장미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훌륭한 사상의 모범을 보이기 위하여 우선 남자와 여자를 분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갖는다."

알베르 까뮈의 희곡 '계엄령'의 한 대목이다. 계엄령과 같은 엄포가 어떤 형태로 개인을 장악하는지를 보여주는 대사다. 80여 년 전의 작품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과 맞닿은 내용에 공포가 엄습한다. 영화 '시빌 워'가 영화에 가까운 현실을 보여준다면 까뮈의 회곡 '계엄령'은 현실의 영화 한 장면을 목소리로 전달한다. 비상시국에 개인 같은 건 없는 거라고, 소설을 읽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 죄악이라고. 개인을 잃어버린 시민들은 권력의 총부리에 숨죽이고 돌부처처럼 눈밭에 앉아 있는 것이다. 계엄령 무릎 아래의 풍경이 이토록 숭고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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