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밤늦은 시간에 귀가할 때 재활용 수거장 근처에서 누군가 일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폐지 수거하는 할아버지가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집 근처 거리의 담벽에는 '베트남 캄보디아 젊은 여자 결혼 주선'이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TV 뉴스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 된 젊은이들의 탄식 소리,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칼을 들이댄 패륜의 소식들이 들려와 가슴을 답답하고 움츠러들게 한다.
평소에도 '슬픔'이나 '절망' 같은 어두운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요즘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밝고 기쁜 내용보다는 우울하고 가슴 저리는 일이 많다. 삶의 많은 부분은 '슬픔'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실현의 기쁨을 추구하고 있지만, 슬픔 속에서 세계와 연결된 타자와의 관계를 확인하거나 실존의 상실과 좌절로 빠져들게 된다.
어느 경우이든 슬픔은 모든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 정서로서의 사람의 온전성을 저해하는 감정이다. 슬픔으로 대변되는 정서적 경향들은 삶의 애착을 상실하거나 좌절시키는 동인(動因)이 된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부당한 폭력에 대해 분노를 경험할 때,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배신에 한없이 절망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어 상실의 고통에 빠지게 될 때, 이런 폭력과 배신과 상실에 대하여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느끼게 된다.
슬픔의 이런 양상은 인간다움의 기본적 동정과 공감을 요구하는 감정이면서 동시에 주체의 정신을 흔들면서 일상의 언어로 표현해낼 수 없는 심리상태를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슬픔은 부재, 상실, 부조리와 같은 심리적 억압으로 다가와 존재의 의미와 범주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슬픔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사유하게 되고, 이 세상의 타자 실존과 맞물리며 자아와 타자를 새로운 존재로 성립하게 만든다. 슬픔을 통해 인간은 자기반성적인 과거와 현재의 실존적 모습을 성찰하게 되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슬픔을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감정의 하나로 보았다. 그는 슬픔을 자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으로 보았으며, 슬픔이 인생의 본질을 고민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인식이라고 했다. 그렇듯 슬픔은 심연 깊은 근원적인 곳에서 나오는 실존적인 증상이다. 인간의 삶은 이상과 구체적인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된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또 삶과 세상에 대하여 절망적인 감정에 빠져들 때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슬픔은 견딜 수 없는 심적 괴로움이 신체적 정신적 증상으로 발현된 것이다. 슬픔의 원인은 상실이나 좌절의 체험으로부터 생겨난다. 상실은 이별이나 죽음과 같이 애착 관계가 단절되면서 이루어지고, 좌절은 목표 추구가 불가능하다는 인과적 상황을 인지하면서 야기된다. 견딜 수 없게 된 상실과 좌절의 경험은 존재감의 하락과 함께 울음이라는 신체적 형태로 드러난다.
불가피하게 인간은 모두 슬픔을 삶의 한 부분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내부에는 크든 작든 슬픔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슬픔을 바라보며 슬픔에 대하여 발화한다는 것은 슬픔이 슬픔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된다. 그로 인해 나는 타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주시하는 존재가 됨으로써 상호 동등해질 수 있다. 분리된 자아가 외재적인 타자의 시점에서 본래적 자아를 바라볼 때 자기 이해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체의 목소리를 거두고 고통을 받는 타자에 침투해서 그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슬픔은 나의 것으로 전화될 수 있다.
슬픔은 그것을 느끼는 당사자의 강도에 따라서 존재와 세계 이해는 더욱 강렬하게 비례할 것이다. 슬픔에서 빚어지는 슬픔, 그것은 바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역설적인 의지와 힘을 수반 하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슬픔과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할수록 역설적으로 이를 이겨내는 자기 존재의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평론가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