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번째 증언본풀이
부모의 명예 회복 이룬 임충구·강은영씨 증언
제주4·3 당시 부모를 잃은 두 아이가 나이 지긋한 어른이 돼 77년 전 사연을 풀어놓았다.
제주4·3연구소는 지난 28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스물네 번째 증언 본풀이 마당 '그리움에 보내는 여든 살 아이들의 편지'를 개최했다.
첫번째 증언자로 나선 임충구씨(81)는 어린 나이에 4·3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연좌제의 굴레가 씌어져 숨죽여 살아왔지만 2022년 결국 부모의 명예 회복을 이뤘다.
임충구씨는 '폭도 아들, 빨갱이 아들' 소리를 들을까 아버지 이름도 밝히지 못한 채 70여 년간 고통을 인내하며 살아온 세월을 증언했다.
임 씨가 기억하는 아버지 임원전씨 마지막 모습은 "어머니 말 잘 듣고 누이동생이랑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남긴 채 집을 나선 뒷모습이다.
임원전씨는 4·3 발발 초기에 산에 올랐다가 행방불명된 후 정뜨르 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 암매장됐다. 유가족들은 제주4·3진상보고서를 통해 아버지가 제주공항에서 운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식들을 서북청년단으로부터 지키려 했던 임 씨 어머니는 1950년 6·25전쟁 직후 예비검속으로 경찰에 끌려가 모슬포 섯알오름에서 희생됐다.
임충구씨는 "언제, 어디에서, 왜 부모가 죽임을 당했는지 물어보는 것이 금기였던 시절이 오랫동안 이어졌다"며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했음에도 끝내 발령받지 못했던 일과 검찰청 서기·교도소 공안직에 동시 합격한 처남 역시 발령받지 못했던 일 등 평생을 옭아맨 연좌제 피해를 전했다.
임씨는 "아버지를 원망 안 해 봤다면 거짓말"이라며 "4·3진상보고서를 보며 모두 잘 사는 사회를 위해 애쓰다 아버지가 희생됐다는 생각을 하니 이제 원망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의 명예 회복을 위해 꾸준히 달려왔다"며 "2022년 10월 4일 특별재심으로 아버지의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고 덧붙였다.
이어 "4·3 폄훼 자료를 근거로 사상을 재검증하겠다는 것은 망인을 두 번 죽이고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두번째 증언자인 강은영씨(83)도 4·3 광풍 속에 아버지를 잃고 어렵게 살아왔지만,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며 아버지 명예 회복을 이뤄냈다.
강씨 아버지인 강성모씨는 군인들에게 부당함을 항의했다는 이유로 연행돼 1950년 7월 16일 산지항 앞바다에서 수장됐다.
강씨는 "고등학교 시절 바닷가로 데려간 어머니는 광목 적삼을 펴들고 아버지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며 "아버지 시신이 없어 무덤을 만들지 못한 것이 한이었던 어머니는 적삼을 아버지 비석 아래 묻었다"고 전했다. 김은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