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청주고인쇄박물관 편 

흥덕사에서는 범종 소리가 울리고 중생을 깨우치려는 어느 스님의 마음이 세상 저 멀리 퍼져나간다. 금속활자의 글자는 설법이 되고 향기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직지」는 1377년 고려시대 청주 흥덕사에서 고승이었던 백운이란 호를 가진 경한 스님께서 집필하여 쓴 책을 금속활자로 뜬 것이다.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인쇄하여 만든 '성서'보다 78년 앞선 것이다. 「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으로 공인되어 2001년 9월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직지」는 원래 상하 두 권이었는데, 상권은 분실되었고 현재는 하권만 남아 있다. 하권마저도 프랑스로 유실되어 그곳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소장되어 있다. 백운의 제자인 석찬, 달잠, 묘덕 스님이 「직지」를 간행했는데 묘덕 스님이 많은 시주를 하게 되어 출간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금속활자가 만들어진 덕분에 글자 한자 한자에 공을 들여서 필사해 만들어지던 책을 빠르고 편안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 옛날 금속활자로 만들어진 책을 보면 묘덕 스님 공덕의 마음이 새겨져 있는 듯하다.

'직지(直指)'는 "바로 가리키다"는 뜻으로 경전이 아닌 스님들을 위한 설법서이다. 직지는 한지로 되어 있어 한지의 향을 느끼며 설법이 들려오는 듯 해서 직지를 읽으면 곧 부처의 마음이 전해온다. 「직지」의 원래 명칭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은 '무심선(無心禪)'이라는 특유의 선 수행법을 가르치고 있다. 

'직지심체(直指心體)'는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이라는 오도(悟道)의 명구에서 따온 것으로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깨달을 때 그 심성이 바로 부처의 실체라는 것이다. 이는 무심무념으로 있으면서, 저마다 지니고 있는 깨달음(佛性)이 자연스럽게 깨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현들은 저 정교한 직지 활자에 영혼을 담아 후손들에게 물려주었지만, 우리의 삶은 비루하고 글은 영세하다. 

「직지」는 우리의 삶과 글에 대해서 많은 진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지랑이는 본래 물이 아닌데 목마른 사슴은 알지 못해 부질없이 헤메인다." 우리는 아지랑이 속 같은 어둠 속에서 목마른 사슴같이 헤매고 있지만 진리의 길은 멀리 있다. 「직지」를 만든 순백한 영혼과 그를 닮은 글을 언제면 쓸 수 있을까. 영혼이 담긴 한 줄 글을 쓰기 위해 밤새며 앉아 있어도 언어는 미궁 속을 헤매고 있다. 글쟁이들이 글쓰기의 고통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한 줄의 글에서라도 더 나은 마음과 감정을 표현해내기 위해 고뇌하는 일이 어찌 이리 힘들기만 한가. 그렇지만 나의 글이 활자화되어 이 세상에서 떠돌아 다닐 것을 생각하면 한 줄의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밤을 지샌다고 한들 어찌 무량할 것인가. 

이 세상은 갈수록 아름다움과 진실을 상실하여 타락하고 추악해지고 있고 우리는 목마른 사슴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헤매고 있다. 진실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이 어리석어 진실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헛되고 헛되다 하네." 「직지」가 이르는 대로 진실과 진리를 위한 깨달음의 마음은 멀리하면서 헛된 아름다움과 욕망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진실의 세계에 닿기 위해 정진하는 사람들도 점점 없어져 가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절망적인 삶의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이 세상에서 진정한 아름다움과 진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과 그것을 찾고자 하는 노력과 희망을 포기할 수만은 없다. 

우리가 찾고 있는 진리의 목소리는 세상의 모든 타락과 불의에 대해 마지막까지 구원을 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진리는 원래 형체도 없어 집착도 없고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네." 진리의 목소리는 과학기술이나 자본과 같이 세상을 위하여 당장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목소리가 이 세상의 불의와 타락을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인간과 세상이 나아갈 길에 빛을 비추어 준다. 갈수록 암담해 가는 이 삶의 현실에서 진리의 빛은 왜곡되고 타락된 인간과 세상에 어둠을 밝혀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는 더욱 위대하게 보인다. 「직지」에 담긴 위대한 정신은 100년도 지나지 않아 세종 대왕이 한글을 창제함으로써 활짝 개화하게 된다. 한글의 위대함은 무엇보다 그 창제 정신에 있다. 세종 대왕은 한글을 창제하면서 모든 사람이 쉽게 배워서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고자 했다. 한글 창제는 여러 면에서 그 위대함을 찾을 수 있으나, 백성을 사랑하고 그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세종 대왕의 민중 교화의 이데올로기가 담겨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러한 창제 정신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직지」를 펴낸 흥덕사는 오늘날에는 폐사되어 흥덕사지로 남아 있고, 그 옆에는 고인쇄박물관이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에는 '직지'라는 글자가 시내 곳곳에 날린다. 「직지」는 외국 땅 어딘가로 떠나 그 정신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프랑스에 유배된 「직지」는 언제면 조국 땅에 돌아와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직지가 이 땅으로 돌아와 그 모습을 드러내면 우리의 삶과 글도 탈각하여 찬란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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