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박완서 동화 「손」
우리의 신체 부위 중에서 온종일 가장 바삐 움직이는 중요한 곳은 어디일까. 신체의 모든 부분에서 중요치 않은 곳이 없지만, 눈과 함께 가장 바쁜 신체 부위는 두 손이 아닐까 한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책을 뒤적이는 것은 모두 두 손에 의해서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지하철 손잡이를 붙잡는 것도 손이다.
손은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눈다. 서로 다툰 후 화해를 위해 손을 내밀거나 누군가에게 축하하거나 위로할 때 손을 마주 잡으며 감정을 전한다. 손은 개인은 물론 인간사회에도 많은 의미를 전해 주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의 손은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유인력으로 유명한 과학자 뉴턴은 사람의 엄지손가락이야말로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사사로운 영리활동이 사회 전체의 공적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를 부르면서 서로의 결속과 화합을 다짐했고, 88올림픽 때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를 부르면서 세계의 연대와 평화를 강조했다.
손의 의미와 유래와 상관 없이 우리는 일상적으로 많은 사람과 손을 잡는다. 손을 잡아 보면 따뜻한 손도 있고 거친 손도 있고 찬 손도 있다. 젊은 시절 나의 손은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 여자의 손 같이 작고 부드러웠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손을 이용해서 거칠고 힘든 일을 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이런 사실을 일찌감치 감지하신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라는 당부를 계속하셨다.
어머니는 손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 준다고 하였다. "손이 곧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손을 보면 된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림이 편안한지 곤란한지는 손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만 손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하셨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어머니의 거칠고 검은 손에는 깊은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와 6·25 사변의 폐허 속에 계속되던 가난과 흉년으로 보리고개를 겪으면서 어머니의 삶은 오직 자식들 키우기와 가정 지키기에 노심초사한 세월이었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에 엎드려 밭매고 논매며 농사지었고 겨울이면 식구들 옷 빨래를 냇가에 얼음을 깨고 해야 했다. 그리하여 손등은 거칠고 손가락은 갈라져 있기 일쑤였다. 거친 손이었지만 아랫목에 엎드려 책을 읽던 자식 등에 살며시 손을 넣어 등을 긁어주시곤 했다. 삶에 찌든 어머니의 딱딱한 손바닥은 지문이 닳아서 주민등록증에 지장을 찍을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소설가 박완서의 동화 「손」에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손에 배어있는 삶의 모습과 의미가 드러난다. 엄마와 함께 지하철을 타게 된 아이는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에게 궁금한 게 많다. 왜 이렇게 주름이 많은지, 손등에 비치는 푸른 핏줄은 무엇인지, 그리고 할머니가 손에 끼고 있는 푸른빛 반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렇지만 아이는 할머니의 손과 손에 낀 반지에 담긴 지난 세월의 무게와 사랑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힘들고 고된 삶의 여정에 지친 어머니의 손은 임종하실 때는 더욱 거칠고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주먹을 꼭 쥐고, 죽을 때에는 손을 펴고 죽는다고 한다. 아마도 태어날 때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손에 쥐려고 하지만,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가고자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머니의 손은 참으로 길고도 힘들게 많은 일을 하셨다. 그렇지만 언제나 따뜻하고 자비로운 손길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 많은 이승을 떠나면서 그 손도 마침내 차디차게 식어갔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에 나오는 '그대의 찬 손'은 내가 좋아하는 아리아의 하나이다. 아리아는 제1막에서 주인공 로돌포가 미미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감싸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로돌포는 노래한다. "그대의 작은 손이 무척 차갑군요. 제가 따듯하게 녹여 드릴게요." 이 세상의 모든 손은 위대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