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시 왔다. 거리 곳곳에서는 정치 현수막이 휘날리고 특정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가두 방송이 요란하다. 

'정치(政治)'는 우리 주변에서 항상 존재하지만, 때로는 추상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많은 사람은 정치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통령, 국회의원 같은 국가적 인물이나 선거같은 중대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정치는 단순히 특정한 사람과 활동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아무리 외면하고자 해도 정치란 사람들의 일상과 너무나도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영역 중의 하나이다. '정치'라는 말에서 '정'(政)은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잡는다는 의미이며, '치'(治)는 물이 넘쳐서 피해를 입는 것을 수습하고 잘 다스려 피해를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한 국가의 지도자는 바로 나라의 잘못된 것을 바르게 잡고, 국민들의 뜻을 잘 모아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한,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치가 자연스럽게 발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사람들의 모임에서 대표를 뽑는 일,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정하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일이 정치의 본질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국가와 훌륭한 시민은 훌륭한 정치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가난한 사회가 부유해지려면 근본적인 정치적 환골탈퇴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선진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룬 국가들이 역사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가는 반드시 '좋은 인간'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정치  지도자가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정치적 정의'(to polkitikon dikaion)를 실현하는 공동체다. 정치적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관직에 봉사하는 정치가들이 모두 현실적으로 다 훌륭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국가가 '좋은 시민'과 '좋은 인간'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치는 기본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활동이 되어야 한다.

여태 우리나라를 이끌어 온 대통령들은 선출되기 전에는 하나같이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상 이런 대통령이 얼마나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불행히도 많은 대통령은 장기집권, 부정부패, 권력남용 등의 '일그러진 모습'으로 남아 있다. 

막스베버(Max Weber)는 정치인의 기본 태도로 책임윤리를 들고 있다. 정치인에겐 자신의  일에 대한 소명 의식과 함께 책임윤리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과연 현재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정당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묵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맞이해야 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크게 바뀌어야 할 곳은 정치권인 듯하다. 

영국소설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흔히 단순한 동화로 많이 읽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신랄한 정치 풍자극이다. 스위프트는 공직을 위한 사람을 뽑을 때에는 후보의 능력보다는 도덕성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하였다. 공직에 내세울 사람은 개인적 재능이나 경험보다는 진리, 정의, 절제 등의 미덕을 지킬 사람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자신의 부패한 심성을 숨기고, 옹호하는 능력을 가진 자의 고의적인 술수는 공공 이익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다. 

우리 정치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가 빠른 속도로 바뀌어 가고 있음에도 정치판은 변함없이 후진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경제협력기구인 OECD에 진입한 지 오래고 사회의 모든 분야는 변모해 가고 있지만 정치의 선진화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끝없는 정쟁,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아집과 독선에 가득 찬 우리 정치가들에게 이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치는 한 사회를 최상의 상태로 이끌 수도 있지만, 최악의 벼랑 끝으로 밀어낼 수 있다. 우리가 뽑아야 할 대통령은 말이 아니라 진짜 행동으로 국민과 나라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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