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인간이 생로병사를 겪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청춘의 시간을 지나고 늙음의 시간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년이 지나 노년에 이르게 되면, 눈도 흐려지고 생각도 활기차지 못하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지게 된다. 이런 현상은 바로 늙음이 다가왔다는 표식이다.
그 푸르게 생생하던 젊음은 어디로 가버리고 마침내 나에게도 늙음이 왔는가. 인간의 진정한 보석은 푸르른 젊음의 시간이었다. 젊음이란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이 남아 있는 자의 경쾌하면서도 열정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시간에는 조금은 경솔하지만, 아낌없이 거침없이 오직 내일을 향한 희망으로 살아간다. 그 아름답고 찬란하던 시간은 모두 다 떠나버리고 늙음의 시간이 다가온 것인가.
어렸을 때 기차를 타고 있으면 건물과 길가의 집들이 지나가고 기차는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제는 기차를 타면 집들은 가만히 있고 나만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이 흘러가는 것인지 세월이 흘러가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늙어간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삶이 힘들어도 세월은 흘러간다.
젊음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젊음이 인생의 가장 찬란하던 시기였음을 그리고 젊음이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젊음은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도 대체할 수도 없으며 절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단 한 번뿐인 인생의 황금기였다. 그렇지만 화려한 태양이여, 안녕히···. 나의 육신과 정신은 모든 것이 해체되어 가라앉기 시작한다네.
젊음도 한순간이듯 늙음도 한순간이다. 젊은 시절은 되돌아갈 수 없듯이 생의 남은 늙음의 시간도 얼마나 될지 알 수가 없다. 젊음은 다가올 날을 생각지 못하고 늙고 쭈글쭈글하고 볼품없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언젠가는 늙고 병들어 시들고 죽게 마련이다.
정신과 육신이 헐벗고 야위어가는 것이 늙음이다. 우리는 정신과 육신이 메말라 가는 이 경험을 결코 피해 갈 수 없다. 그러는 가운데 늙음은 시작된다. 늙음이란 하루하루 삶의 마지막인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죽음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늙고 쇠약해졌음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조용히 은밀하게 다가온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늙음도 두려울 이유가 없다.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늙음이고, 무엇이 죽음인가. 모든 생물은 열매를 맺는다. 과일들도 결실을 맺으면 생생하던 줄기와 이파리는 누렇게 시들어 볼품 없어지게 된다. 사람도 일생 그 열매인 자식들을 성장시키느라, 사회에서 자신의 일을 하느라 온 힘을 다하다 보면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해가게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하지만 노인의 힘은 위대하고 당당하다.
그렇다면 하루가 다르게 늙고 시들어 가는 것을 굳이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또한 다가오는 죽음을 무서워할 것도 아니다. 늙는다는 것은 휴식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위한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있던 것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더 편히 쉬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어차피 인생은 일엽편주로 강을 건너 바다에 이르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바다에 도착해서 긴 세월 타고 온 배를 버리고 저 아득하고 먼 새로운 저승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육신은 버리고 영혼은 다시 나그네가 되어 다른 세상을 떠돌게 될 것이다.
100세가 넘은 노교수의 말씀 중에 '아름다운 늙음'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오늘도 시간은 거침없이 흐른다. 사람들은 젊은 시절의 시간은 너무 천천히 흐르고, 늙음의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른다고 이야기 한다. 늙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는 모두 각자의 몫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유명한 소설 「노인과 바다」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의 시간에 최선을 다함이 삶이요, 이러한 삶이 더 오래 지속되어 편안하고 안락해짐이 늙음이요, 마지막으로 영원히 쉬는 것이 죽음이 아닐까.
그러나 어떠한 사설에도 불구하고 생의 마지막을 향해 늙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임이 분명하다. 손수건 흔들면서 달아나는 시간 위로 노년의 우수가 함께 흔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