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보 제주도 동물위생시험소 주무관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4월까지 전국은 다시 한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의 위협에 휩싸였다. 전국적으로 47건의 농가 확진이 발생하며 큰 피해를 입었지만 제주도는 이번에도 예외였다. 단 한 건의 발병 사례 없이 'AI 청정지역'의 위상을 지켜낸 것이다. 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진 치열한 방역 노력과 공동체의 연대, 그리고 철저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값진 결실이다.

제주의 공항과 항만은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하는 역할을 다했다. 반입 차량과 축산 관계자에 대한 소독 및 점검, 육지부 가금류와 생산물 사전 반입 신고, 무엇보다 도내 가금 농가의 굳건한 방역 노력은 제주 방역의 핵심 축이었다. 출입차량 2단계 소독, 외부인 출입 통제, 전실 설치와 CCTV 운영 등 오염원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태도는 스스로를 지키고 제주를 보호하겠다는 농가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줬다.

여기에 행정의 일관된 대응 체계와 신속한 지원이 더해졌다. 조기 예찰과 출하 전 검사, 방역 물품 지원, 기관 간 협업 시스템 구축은 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대응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단순한 메뉴얼의 이행이 아니라 수년간 다져온 신뢰와 협력의 결과였다.

AI 청정지역을 유지하는 것은 '운'이 아니다. 이는 한 번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긴장의 연속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방역 의식이 만들어낸 집단적 노력의 결정체다. 이번 겨울, 제주는 또 한번 '사람이 만든 방역'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AI는 매년 겨울 찾아오며 그 위협은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번 겨울의 경험으로 제주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앞으로도 그 길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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