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인근서 평화 레퀴엠
미사 형식에 제주 정서 결합
각국 인사·도민 대표 등 참석
세계기록유산 등재 첫 해외무대

제주4·3의 아픔과 평화의 염원이 예술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 이탈리아 로마 중심부에서 울려 퍼졌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열린 이번 공연은 레퀴엠 형식을 통해 제주4·3의 역사적 의미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화해와 연대의 메시지를 공유하는 자리가 됐다.

‘평화 레퀴엠 – 제주4·3을 기억하며’ 공연은 24일 오후 7시(현지시간), 로마 교황청 소속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에 데이 마르티리 성당에서 개최됐다. 바티칸과 인접한 이 성당은 미켈란젤로가 설계에 참여한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공연은 ‘제주의 아픔 세계의 평화로’를 주제로, 제주도의회 한동수 의원(제주4·3 평화 레퀴엠 추진위원장)의 사회로 막을 열었다.

현장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하성용 4·3특별위원회 위원장, 고의숙·이승아·이정엽 도의원 등 도내 대표들과 함께 김준구 주이탈리아 한국대사, 김창범 제주4·3유족회장, 문창우 천주교 제주교구장, 까를로 알베르토 앙골라 교황청 대사 등 각국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번 공연은 제주 출신 작곡가 문효진이 작곡한 현대 진혼곡으로, 가톨릭 전통 미사 형식 위에 제주 여성의 자장가 ‘웡이자랑’, 제주 바다의 이미지, 집단적 상실의 기억을 결합한 곡으로 구성됐다. 총 13곡으로 약 60분간 진행됐으며, 대표곡으로는 ‘눈물의 날(Lacrimosa)’ ‘설운아기(Povero Piccolino)’ ‘진노의 날(Dies Irae)’ 등이 연주됐다.

총기획은 이탈리아 복스 인 아르떼(Vox in Arte)의 미카엘 마르투시엘로 예술감독이, 연출은 제주 출신이자 4·3유족인 부종배 독일 오스나브뤼크 시립오페라극장 성악가가 맡았다.

문효진 작곡가가 음악감독을, 파브리치오 까시 나폴리 산 카를로극장 지휘자가 지휘봉을 잡았다.

공연은 로마오페라극장 단원 40명,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합창단원 32명, 어린이 합창단원 6명, 제주 유스코러스 소속 청소년 13명으로 구성된 협연진이 함께 무대를 꾸몄다.

제주어로 부른 ‘웡이자랑’ ‘이어도사나’ ‘설운아기’ 등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관객들의 공감과 울림을 이끌어냈다.

공연을 마친 후 관객 300여명은 협연진에게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은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8년 70주년을 맞아 4·3 유족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셨다”면서 “이번 평화 레퀴엠이 전쟁이 아닌 평화의 시대를 여는 작은 울림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예술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 4·3의 화해와 상생의 정신이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가길 바란다”며 “평화 레퀴엠이 침묵 속에 갇힌 영혼을 위로하고 평화를 위한 인류의 기도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문효진 작곡가는 “제주4·3평화레퀴엠 공연을 통해 4·3영령들이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내고 희망과 다시 만날 수 있는 천국의 삶을 꿈꾸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부종배 성악가는 “제주4·3평화레퀴엠은 제주의 소리와 멜로디 제주의 언어와 세계의 소리인 레퀴엠이 결합된 곡”이라며 “로마에서 처음 연주된 제주4·3평화레퀴엠이 더 많은 나라에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창우 제주교구장은 “순교자들을 기리는 성당에서 제주4·3평화레퀴엠 공연을 개최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며 “이번 공연이 제주4·3의 세계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로마시민 알프레도 까시에이요는 “가톨릭 문화와 한국 문화가 혼합되면서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우면서 보편적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세계 평화라는 제주4·3의 비전도 매우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공연에 앞서 오영훈 지사는 문창우 주교가 집전한 ‘한국을 위한 미사’에 참석해 제주4·3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했다. 고기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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