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인생이란 비극인가, 희극인가. 유명한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고 말한다.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고난과 슬픔을 가까이서 바라볼 때는 너무나 힘들고 비극적으로 느껴지지만, 시간이 흘러 전체적인 삶을 되돌아볼 때는 희극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의 인생 자체가 비극과 희극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모순덩어리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상대성을 띨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채플린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인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상통하는 것이다.
오래전 고대 그리스시대 때부터 비극은 인간의 마음속에 생기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의 갈등의 결과로 인한 고통과 불행을 취급한다. 비극의 기원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디오니소스신을 찬양하는 열광적인 노래와 춤이 포함된 종교적인 축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에서 비극에 대한 고전적인 문학적 정의를 내렸는데, "비극은 가치 있거나 진지하고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 완결된 행동의 모방이다. 쾌적한 장식을 한 언어를 사용하고, 각종 장식이 작품의 상이한 여러 부분에 삽입된다. 서술의 형식이 아니라 행동의 형식을 취한다."고 했다. 또한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통하여 감정을 '정화(catharsis)'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정의하였다. 비극은 무자비하고 비극적인 운명에 의해 추구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가장 고귀하고 가장 용감한 인간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고대 이래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비극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인간이 신이 되지 않는 한 인간에게 고통과 절망은 그치지 않았다. 끝없는 고통과 수난의 역사가 바로 인간 비극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지구상에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전쟁과 착취와 폭력은 주체와 타자에게 고통을 가져오면서 삶의 역사를 이루어 온 것이다. 그러한 결과로 생긴 수많은 희생자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지금도 비극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오늘날도 삶의 상황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후기자본주의의 팽배에 따라 자본을 위한 무한 경쟁은 끝없는 착취와 전쟁을 낳게 되었고, 권력을 향한 세력 다툼은 인간과 나라의 존망을 좌지우지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비극적 상황을 이기지 못한 인간의 삶은 거친 바다 속에서 목적 없이 항해하는 난파선처럼 위태롭다.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의 상황과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비극적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을 인간은 없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인 인간의 비극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신이 내린 비극적인 운명과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 대립하고 충돌하는 삶의 상황 속에서 존재의 모습을 알아가기 위한 몸부림은 계속된다. 결국 모든 인간이 지향하는 영원불멸의 생은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비극적 상황 속에서 고통의 울부짖음은 그치지 않는다.
인간 비극의 원형을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찾을 수 있다. 「오이디푸스 왕」은 테베의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이다. 오이디푸스왕은 운명의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운명의 그물에 사로잡힌 존재로서, 아버지인 선왕을 살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고 극도의 절망 상태에 빠진 오이디푸스왕은 자신의 눈을 뽑아내고, 왕비 이오카스테는 자살한다. 작가는 오이디푸스왕을 통하여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와 그의 비극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런 비극을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의 기원과 예술적 가치로 새롭게 분석한다. 니체는 이성적·형식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아폴론적 삶과 감성적·도취적 가치인 디오니소스적 삶의 충동의 대립과 조화를 통한 삶의 의미를 구명하고자 하였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비극은 삶을 정당화한다. 그것은 고통의 미학이며, 운명을 긍정하는 행위다."고 말한다.
인생이란 비극에서 희극을 보는 순간도 있고, 희극에서 비극을 보는 순간도 있다. 앞선 찰리 채플린의 말을 뒤집으면,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희극일 수도 있다. 채플린의 말은 당장 힘든 일을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시간이 흘러 멀리서 되돌아보았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므로 희극처럼 느껴질 거라는 것이다. 하루하루 희극적인 마음으로 즐겁고 행복한 삶의 태도가 우리 인생을 더욱 값지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힘든 비극 속에서도 삶의 어딘가로부터 위로를 받으며 다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가질 때, 인생은 비극이지만 희극 같은 즐겁고 기쁜 순간이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