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에게 너무 짧은 파란불]
4~6차선 건널목 노인 큰 부담
수레 끌고 큰 짐 지고 위험 보행
"고령자 밀집 지역 등 개선 추진"
"무릎이 안 좋아 천천히 걸어왔는데 벌써 신호가 바뀌었습니다"
지난해 제주지역 교통사고 사망자 절반 이상이 고령자로 나타난 가운데, 노인을 비롯해 거동이 불편한 보행자를 위한 대대적인 신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30일 오전 제주시 노형동의 한 6차선 도로에서는 신호등의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한 무리의 노인들이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발이 인도에 닿기가 무섭게 신호등은 곧장 빨간불로 바뀌었고, 수십 대의 차량이 쏜살같이 횡단보도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현대인이라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횡단보도지만, 노인들은 가끔 길을 건너는 게 버겁게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이른 아침 병원을 들렀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60대 정모씨는 "나이를 먹을수록 무릎이 안 좋아지고 걸음걸이도 느려지는데 도로는 넓어지기만 하는 것 같아 야속하다"며 "길을 건널 때마다 조바심이 생길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한 노인은 금세 바뀌어 버린 보행 신호에 길을 건너지 못하자 차들이 오지 않는 때를 틈타 무단횡단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같은 날 제주시 이도동 왕복 4차선 도로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있는 노인들은 대부분 지팡이를 짚고 보행하거나 유모차나 휠체어 등에 몸을 의지한 채 길을 건넜다.
일부 노인들은 박스와 병 등 잡동사니를 가득 실은 수레를 끌며 횡단도로를 건너기도 했다.
한 노인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신호가 바뀌자 발걸음을 재촉하다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고령 보행자의 교통사고도 잇따르는 실정이다.
실제 지난 21일 오후 8시13분께 제주시 노형동의 한 교차로 인근에서 도로를 횡단하던 80대 여성이 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머리 등을 크게 다친 노인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또 지난 5월 14일 오후 1시40분께 제주시 이도동의 한 도로에서 80대 보행자가 차에 치여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같은 날 제주시 구좌읍에서도 80대 보행자가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도 관계자는 "고령자 보행 교통사고가 지속 증가함에 따라 노인 비율이 높은 지역을 우선으로 보행 신호 개선 사업을 추진한다"며 "이번 사업 후 현장 모니터링을 통해 교차로 횡단보도 등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어르신들의 안전한 보행권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지속적으로 발굴·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전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