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윌리엄 워즈워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가지마다 연두의 새잎이 돋아나오는 것을 보고 신기해한 것이 엊그제인데, 어느새 8월도 거의 지나고 신록은 짙다 못해 나뭇잎들이 검은 느낌을 주는 계절이 되었다. 40도 가까운 뜨거운 열기가 매일 힘들었지만 또 다른 계절이 곧 올 것이라 생각하면 위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다가왔다 떠난다.
며칠 동안 장맛비가 내리더니 비가 그치자, 산등성이 너머로 무지개가 찬란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무지개는 햇빛이 공기 중의 물방울을 만나 굴절되고 반사되어 분산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다. 무지개는 지상에서는 반원이나 부채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형이다. 물방울은 빛을 분산시켜 파장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을 드러내고 이 과정에서 여러 색으로 나뉘면서 무지개가 만들어진다.
과학적 원리를 알고 있어도 소나기 끝에 뜻밖의 무지개를 만나면 왠지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무지개를 보며 사람들은 환호하면서 반가운 일이나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때론 아련한 어릴 적 기억이나 먼 세계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성경에 나오는 무지개는 '노아의 홍수' 때 하느님이 인간에게 보여준 화해와 평화의 징표다. 하느님은 타락한 인간 세상을 지독한 홍수로 쓸어 버린 뒤,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무지개를 세운다. 그래서 무지개는 고통과 시련 후의 위로와 희망,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가지는 경이로움이나 신비로움의 감정은 무엇일까. 무지개가 뜨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너머의 세계를 응시하게 된다. 이건 어디서 오는 마음일까. 무지개가 아름다운 이유는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흡사 인생에서 쉽게 잡을 래야 잡을 수 없는 환상과 희망 같은 것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영문학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시인이고, 영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의 시 한 구절 정도는 암송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그의 이름은 자연과 인생의 내면적 교감을 잘 표현한 시 「초원의 빛」 「무지개」 「수선화」 등으로 친숙하다. 유명한 「무지개」(원제목은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 마다」)를 다시 읽어본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내 가슴 설레느니,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에서
워즈워스는 무지개가 하늘에 뜬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들떠서 두근거린다. 어린 시절 하늘의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뛰었듯이 지금도 그렇다고 고백하며 늙어서도 그러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설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이 어른이 돼도 경건함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무지개는 이처럼 순진했던 동심을 일깨우는 대자연의 선물이다.
시에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아름답고 순수한 감성이 우리에게서 사라진다면, 무지개를 보고 신기해하는 호기심도 없어지고 그것은 캄캄한 죽음과 다를 바 없다. 어린이들은 무지개를 보고 순수하고 기쁘게 손을 뻗는다. 아득히 멀리 있는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어린이의 마음이 진짜 우리가 간직해야 할 세계인지 모른다. 그러니 그런 기억을 잃은 어른은 어린이에게서 그 순수한 마음을 배워야 할 수밖에.
우리의 삶은 무지개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들.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달아나 버리는 것들, 간신히 잡아보면 소용없는 허탈한 것들···. 인생은 그립고 밉고 아쉬운 것들이다. 잡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지 말고 저 하늘에 걸린 무지개처럼 그저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소중하게 바라보자.
무지개는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며 보속(補贖)의 거울처럼 한 번씩 꺼내보아야 할 아름다움이고 희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