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앙리 르페브르 「현대세계의 일상성」
우리의 일상은 참으로 보잘 것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하고 늘 보는 사람들을 만나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쳇바퀴처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매일매일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 비천한 인생의 반복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하루를 무사히 보낸다는 것, 큰 사고 없이 편안한 나날을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란 말이 있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이라는 지극히 평범하게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일들이지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밥 한 끼, 차 한 잔의 의미는 크기만 하다. 밥 한 끼, 차 한 잔을 나누면서 하루는 이루어지고 인생이 만들어진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것도 지루한 어느 하루 중에서이었고,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린 것도 아를의 지루한 일상에서 잉태되었다.
일상의 한순간 한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는 생각할수록 새삼스럽다. 아침에 무사히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하고, 세끼의 밥을 먹고, 시간에 쫓기며 원고를 어딘가로 보내야 하는 이 지겨운 일상은 얼마나 경건하고 고귀한 것인가. 세상이 잠든 익명의 밤을 지새우며 칸트의 철학을 읽고 베토벤의 <운명>을 듣는 시간, 산책길에 외로이 피어난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바라보며 경탄하는 시간,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한 저 수많은 별은 왜 소중한 것인가를 묻는 시간, 자연의 만물들과 대화하는 일상의 이 헐거운 시간이 한없이 무거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영혼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고 경건하다고 여겨진다.
일상이란 우리들의 날마다 되풀이되는 삶을 말한다. 앙리 르페브르에 의하면, 일상에 빠져든다는 것은 추락도 아니고 봉쇄나 장애도 아니며, 다만 하나의 장(場)이며 단계일 뿐이다. 더 나아가 일상은 욕구, 노동, 생산 등 여러 일들로 이루어진 순간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위한 출발이며 끝이다. 말하자면 일상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생활이다. 이러한 일상은 그동안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런 현상이었기 때문에 삶의 과정에서 외면되기 일쑤였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가 심화되어 산업사회를 거쳐 소비사회에 이르게 되고, 삶과 일상이 분리되어 전체성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면서 더욱 그러했다.
산업혁명 이전의 농경사회에서 노동과 일상은 자본이나 사회에 의해 통제되기보다 자연에 속한 것이었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 일하며 생활하던 전통사회 속에서의 일상은 인간의 총체적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일상성'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들판에 나가 일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오고, 봄이 되면 파종하고 가을에 수확하는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나날의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일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느끼는 나른하고도 불안한 '일상성'은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라기보다 외부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특정한 일상적 성격이다. 도시화와 근대화는 인간 삶의 환경을 변화시켰다. 인간과 자연은 분리되었으며 전체성이 와해하면서 인간 중심적 사회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외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인간관계는 자본의 소통방식이 교환을 매개로 이루어지게 되고 기호화를 통해 조작된 소비와 끝없는 욕망 사이에서 현대인들은 실존적 한계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하루하루를 말없이 버티면서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 이 세상과 인생에 대한 할 말이 많고 마음이 무겁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리가 아득하다. 매일 반복해서 의미 없이 살아가는 일상들. 흔쾌히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닌 일을 해야만 하는 연속되는 시간들. 이럴 때 삶은 힘들고 지겨워진다. 모든 것이 소중한 순간이라고 자위하지만, 삶은 그 자체가 참으로 힘들고 지겨운 일상의 연속이다.
이 지루한 일상의 반복을 반짝이게 하는 능력은 무엇일까. 일상의 지겨움은 어떤 친밀함으로 변화하는가. 우리를 지겹게 하는 나날의 일, 매일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의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루 하루의 시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책임 의식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수첩에 빼곡하게 적힌 목록을 지우다 보니 어느새 9월이다. 올해도 2/3가 지나갔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여 우리의 인생 전체를 만든다. 이 하루라는 일상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 그 안에 우리 인생의 모든 가능성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