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알베르토 망구엘 「책 읽는 사람들」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니, 길고 힘들었던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는가 보다. 가을을 흔히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하지만 살 쩌야 할 것은 인간의 정신이다.
외국을 다니다 보면 공항이나 레스토랑의 공간에서 여유를 즐기는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가 힘들다.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왠지 멋있어 보인다. 단순히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몰입해 있는 사람의 집중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문자를 개발한 이래 독서를 통하여 꾸준히 지적이고 정서적인 욕구와 탐구심을 개발해 왔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들어 과거에 독서가 담당했던 역할이 컴퓨터와 유튜브, SNS, 인터넷 등의 매체들이 대신하면서 독서를 하는 경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어디서나 대부분 사람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지식과 정보를 얻고 있지만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우리가 같은 내용을 책으로 읽었을 때와 다른 매체를 통해서 보았을 때의 감성적, 정서적 수용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오늘날 각종 전자 매체로부터 나오는 영상 이미지들은 인간의 지각과 인식을 폭넓게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문자문화의 위기를 불러오는 영상매체의 위력은 그것이 문자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코드로 우리의 삶 속에 수용되는 방식을 취한다. 문자와 영상은 동일하게 시각을 통하여 인지되는 지각 행위이지만, 이 둘은 확연하게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상매체가 화면을 통해 제공하는 이미지들은 본질적으로 인식의 차원보다는 감각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영상 이미지를 '보는' 행위는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그 이미지들이 우리의 뇌에 각인되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수용과정을 거친다. 우리가 이용하는 컴퓨터와 TV 같은 전자 영상매체를 통해서는 활발한 지적 · 정서적 활동을 힘들게 한다.
반면에 문자의 경우에는 망막에 비친 문자 자체가 그대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문자의 의미를 '읽는'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행위가 개입되어야 한다. 읽는 행위에는 읽는 사람의 해석과 사유가 동반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구축하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수용 주체의 정신적 참여가 요구된다. 우리의 독서행위는 사유와 해석 없이는 단 한 페이지도 앞으로 나갈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다. 우리의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함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독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의 정보와 지식을 획득하고 언어의 발달을 가져오면서 사고력을 확장시켜 삶의 경험을 풍요롭게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독서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참된 인생관과 가치관에 대한 전기를 마련하는 자기 형성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책 속에 담긴 심오한 사상과 지식을 통하여 가치관을 쌓음으로써 자기 경험을 확장하여 자주성을 기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독서는 독자의 주체성을 바로잡아 주는 인격도야를 위한 자기실현의 원조자라 할 수 있다.
독서는 삶의 유일한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독서 행위란 인간 삶의 위기에 맞서기 위한 인문적 사유를 강화시키는 행위이다. 바로 인간성 파괴에 맞서서 인간의 품위와 자유를 지켜낼 최상의 인문적 가치를 옹호하는 일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독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다른 모든 존재자를 연결함으로써 삶의 올바른 확장을 이루게 된다. 독서의 그런 연결 기능은 타자의 위치에 자신을 놓아 보는 공감 능력을 함양시키고, 그로 인해 인간과 세상의 공존과 상생의 기능을 강화하게 된다. 따라서 독서는 개인적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가치와 불가분리의 관계를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 읽는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를 통하여 전자책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독서의 즐거움과 위안에 대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이 책은 호메로스, 돈키호테, 체 게바라, 예이츠와 같은 작가와 문학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창조적 독서란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찾아내는 능력이며, 우리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책을 읽어 내려갈 때의 독서의 즐거움은 어떤 기술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전하고 있다.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 가을에 매일 조금이라도 독서를 하여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