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마르틴 하이데거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길고 지루하던 여름이 지나고 한 해를 수확하는 한가위를 맞이한다. 사람들은 부모님과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슴이 부푼다. 고향이 있어서 가장 좋은 점은 일상의 삶이 지치고 피곤할 때마다 '돌아갈 곳'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 존재의 근원인 고향, 그곳에서 우리는 어머니 품속에서 같이 나를 기대고 평안하게 숨 쉴 수 있다.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우스」에 나오는 오디세우스는 그의 지혜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기나긴 유량을 거듭한다. 오디세우스처럼 인간은 언제나 고향을 떠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꿈꾸는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신의 저주에 의해 혹은 세상의 혼돈으로 의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랜 시련과 방황의 길을 거치다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오디세우스의 서사에는 인간 삶의 떠남과 돌아옴이라는 길항 관계가 담겨있다. 

고향이란 이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는 곳이지만 동시에 언젠가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곳이다. 독일어에서 고향 '하이마트(Heimat)'는 '집(Heim)'에서 나온 말이며, 그 속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계시는 옛집,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따뜻한 밥과 정겨운 자연 풍경이 함의되어 있다. 

고향은 모든 사람의 삶의 터전이다. 고향길은 밤에 가도 돌에 차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고향을 떠난 사람은 더욱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어 한다. 생전에 못 가면 죽은 후에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자 한다. 그렇게 우리는 정지용 시인의 대표 시 「향수」에서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이제 고향은 우리가 쉽게 찾아가거나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나날이 각박한 삶을 살아가야 하고 급변하는 도시 문명은 우리의 고향을 상실하고 망각하게 만든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현대인은 모두 '고향 상실'이라는 존재 망각의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고향은 인간의 본질이 거주하는 현존재의 근원적인 장소로서의 의미를 지닌 곳이며, 현대인에게 고향 상실은 기술문명의 발전이 초래한 결과로 여겼다. 현대의 기술문명이 인간에게서 인간다움의 서정을 무자비하게 박탈하는 세계인 반면, 고향은 모든 존재자가 자기 고유의 존재를 발현하면서 그 속에서 조화와 사랑이 생성되는 세계이다. 현대의 위기는 이러한 고향 상실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존재의 고향 상실은 우리 시대 삶의 운명이 되었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현대 세계는 기술문명 속에서 모든 사람이 고향을 잃어버리고 존재 의미를 상실해 버린 불안과 공허의 세계다. 지금 우리에게는 고향이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잊어버렸거나 잃어버렸다. 하이데거는 고향을 "존재 자체의 근원"이라고 하였기에, 귀향은 "근원 가까이로 돌아감"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귀향을 위한 의지는 "존재의 진리"가 드러나는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이다. 고향 집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곧 존재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고향은 단순한 향수나 귀향을 위한 곳이 아니다. 고향은 영원히 귀환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이며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단순히 공간적인 고향에 돌아간다고 해서 귀향은 아니다. 하이데거와 시인 횔덜린의 말대로 귀향은 삶의 본질로 돌아가는 거와 같은 것이어서 고향은 일생 동안 근원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고향 상실은 노스탤지어(nostalgia, 향수)를 만들고, 이 정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같은 것이다. 노스탤지어는 본래 그리스어 'nostos(귀향)'와 'lgos(병 혹은 고통)'라는 의미를 지닌 복합어로써 17세기 말 스위스 용병의 의학적 질환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이다. 노스탤지어란 말 그대로 고향에 대한 간절하고 지속적이며 '누그러지지 않는 갈망'에 따르는 '고통'을 뜻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노스탤지어는 더 이상 의학에만 한정되지 않고 과거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나 갈망과 동경의 감정을 나타낸다. 고향에 어머니가 계시리라는 믿음은 고향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이다. 그렇다는 것은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의 향수에는 반드시 어머니라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감회가 내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고향은 끝까지 기억되어야 할 장소이다. 현재의 고달프고 힘든 삶을 떠나 더 평화로운 안온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고향이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한가위를 맞아 고향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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