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훈 「가깝고도 먼 곳」

지난 2월 22일 별세한 오경훈 작가의 유작 「가깝고도 먼 곳」이 출간됐다.

이번 신작 소설집에는 현재의 제주4·3, 과거사로서의 4·3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그 질긴 역사가 남긴 인연에 엮여 있는 삶을 살핀다. 단편 '실향' '마을제', 중편 '강정 길 나그네'는 4·3을 다룬 작품들이다.

'실향'은 4·3으로 인해 뒤엉킨 가족의 수난이 세대를 넘어 계속되고 있음을 용의주도하게 짚어낸 단편이다. 제주의 심각한 현안인 제2공항 문제가 거기에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4·3 때 제주섬에 관철된 국가폭력이 시대와 얼굴만 바꿨을 뿐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마을제'의 공간적 배경은 'K읍 S리'로 설정돼 있다. 이곳은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다랑쉬굴이 존재하는 구좌읍 세화리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1948년 12월 행방불명됐던 주민 11명의 유골이 굴속에 가지런히 놓여 있음이 1992년 봄에 알려지면서 4·3의 참상을 다시금 널리 인식시킨 사건이다. 다랑쉬굴 발굴 20주년인 2012년 마을 주민의 눈으로 이 사건을 되짚었다.

'강정 길 나그네'는 5장으로 구성된 중편소설이다. 4·3의 깊은 상처와 관련된 현실에서의 용서와 화해가 간단하지 않음을 인상적으로 다뤘다.

이 소설집은 '4·3의 법적·제도적 후속조처의 완료, 4·3유족에 대한 희생자 보상 등 4·3의 제도적 절차가 마무리되면 4·3은 완전한 해결에 이르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섬의 숙명 또는 영원한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섬의 운명 속에 제2, 제3의 4.3은 언제나 도래하는 현재형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국제관광지, 에메랄드빛 청정바다, 유네스코 등재 화산섬, 1950m의 한라산, 올레코스, 골프장과 특급호텔 등 제주를 상징하거나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들 그 아래 지층처럼 쌓여있는 제주섬의 운명의 키워드들 섬, 4·3, 개발광풍 등은 섬의 트라우마이자 생채기이기도 하다.

제주섬사람으로서 오롯이 살다간 소설가 오경훈은 제주섬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어쩌면 그가 남기지 않으면 끓는 여름바다를 건너 쇄도해온 태풍이 모든 걸 집어삼켜 지워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절대 잊히면 안 될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GAK. 2만원. 박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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