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경, 고지영, 김규태, 김민경 외 7인 「제주미각」
「제주미각」은 제주 음식을 매개로 제주 사람들의 삶 속에 깃든 철학과 역사, 문화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제주가 고향이거나 제주에서 오래 살아온 '제라진' 제주 인문학자 정민경, 고지영, 김규태, 김민경, 김서영, 김은희, 문성호, 안영실, 이진영, 이가영, 이하영 등이 애정을 담아 토박이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지만 화산회토로 이루어진 제주 땅에서 먹거리는 풍족하게 나지 못했다. 대부분 흙이 날리는 뜬땅이라 쌀 농사를 짓기 어려워 조, 메밀, 보리, 콩 같은 잡곡이나 고구마, 감자 같은 구황작물을 주로 심었다.
고사리, 옥돔, 보말, 무 등 육지나 바다에서 그때그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활용해 육지와는 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척박한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간 제주 사람들은 때로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때로는 여럿이 힘을 합쳐 독특한 음식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렇게 이어져온 제주 음식에는 단순한 '맛'이 아닌 '생명력'이 담겨 있다. 돔베고기, 몸국, 갈칫국, 오메기떡, 옥돔구이, 감귤주스 등 제주를 여행할 때 한 번쯤 접해봤을 익숙하지만 조금은 낯선 제주 음식에 얽힌 역사, 문화적 배경이 「제주미각」 속에 알차게 담겨 있다.
바다 건너(濟)에 존재하는 고을(州)이라는 뜻의 제주. 바다에 둘러싸인 화산섬이라서인지 제주의 식탁은 한라산의 산물과 바다의 산물이 한데 어우러진다. 우영팟(텃밭)과 바당팟(바다)의 조화뿐 아니라 타지 사람들과의 교류의 흔적도 빼놓을 수 없다.
동아시아 해상 무역의 요충지라는 입지 때문에 과거에는 몽골이나 일본 같은 외국의 영향을 받았다면 시대가 흐른 오늘날에는 제주에 터를 잡는 육지 출신 젊은이들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말고기 육회, 고소리술, 당근케이크 같은 메뉴는 이런 외지인들의 요리법이 제주의 식재료와 만나 탄생했다.
이처럼 제주 음식 문화는 끊임없는 변화 속에 '생존'을 위해 탄생했지만 이곳 사람들의 삶과 '공존'하며 이어진다.
제주 토박이들의 경험담뿐 아니라 제주 신화, 민요 등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어우러진 「제주미각」을 읽다보면 매력적인 먹을거리가 '하영' 있는 그 섬으로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문학동네. 2만3000원. 박찬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