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마가렛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인생에서도 세상에서도 문학에서도 바람은 계속 불어대며 우리를 못살게 군다. 바람의 인생, 인생의 바람, 바람이 우리에게 전해준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에는 흔적이 남지 않는다고. 그 길을 지나는 길에서는 뒤도 돌아보지 말라고. 그러면서 당부한다. 바람에 대한 미련은 가지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람은 인생과 세상과 우주를 흔든다. 바람은 능동적이고 격렬한 상태에 있는 공기이다. 바람은 창조적 숨결이며 발산하는 그 무엇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무색무취의 투명한 기체이지만 우주를 지배하는 일차적 요소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바람이란 낱말은 숨결과 정신이라는 두 가지 은유적 의미를 소유한다고 했다. 흔적도 없는 바람은 세상 곳곳을 떠돌면서 슬픔과 아픔의 흔적을 남긴다.

바람은 언제나 지나간 흔적을 남긴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지나가지만 우리에게 현상으로 남는다. 왜 바람인가. 지나간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힘들어 한다. 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인생, 인생은 바람의 연속이다. 바람은 계절의 변화, 새로운 시작,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동안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은 바람을 통해 유토피아, 자유, 행복, 생명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다. 바람은 자연의 순환, 변화, 생명,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도전을 아우르는 상징적 존재로 다양한 문학과 신화에서 깊은 의미를 창조했다.

인류는 언제부터 바람에 대해 생각해 왔을까? 동서고금의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바람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경전에서 표현된 바람의 속성은 자연 현상으로서의 힘, 영적 존재, 그리고 변화와 이동의 상징성으로 나타났다. 물, 불, 바람(공기), 대지의 정령이나 속성 등은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4원소에서 나온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는 이 4가지이며, 이 4원소의 배합으로 여러 물질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였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아나시메네스부터 현대의 기후과학자들까지 많은 사람은 바람에 대한 인간의 사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바람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류 지성사의 핵심 주제라는 것이었다. 아나시메네스가 공기를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과학적 가설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직관이었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론에서 바람은 다른 모든 원소를 연결하는 매개자였다. 

이런 깊은 철학적 사유들이 갈릴레이와 뉴턴의 과학 혁명을 거쳐 현대의 양자역학과 카오스 이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바람에 관한 진정한 지혜는 과학과 철학이 대립할 때가 아니라 이들이 서로 만나 교호할 때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이런 진리는 동양에서도 의상대사의 들숨과 날숨은 생멸의 진리를 담고 있었고, 장자의 대지의 호흡은 우주적 생명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바람은 하나이면서 무한히 다양한 존재이다. 인류와 지구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지혜도 바람과 교류하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수없이 닥쳐오는 개인적 · 집단적 삶의 변화와 위기는 바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바람은 개인의 흥망성쇠를 의미하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바람의 변화는 지구 생태계의 위기 신호이면서 동시에 재생에너지를 통한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과학적 정확성과 철학적 깊이, 환경 의식과 실천적 지혜가 모두 바람을 위한 이해로 필요한 시대이다. 바람의 비밀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는 키울 수 있다. 이는 곧 인류가 당면한 위기에 대하여 자연을 정복하려 하지 말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태도와 같은 것이다. 

바람은 단순한 과학적 기제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역사 속의 상징적 의미로 묘사되어 문학 작품으로 등장한다. 미국 남북전쟁 전후의 남부를 무대로 스칼렛 오하라라는 여성이 겪은 인생 역정을 그린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는 바람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우리 문학에서도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자화상의 길 찾기에 대한 해답을 하늘과 바람에게서 찾고자 하였다. 시인은 하늘과 바람에게서 삶과 존재의 의미를 꿈꾸듯 찾고자 했다. 바람은 우리에게 빛을 주기도 하고 어둠을 주기도 한다. 바람은 우리에게 행복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되기도 한다.

바람은 악의 힘이 되기도 하고 선을 낳는 소생의 힘도 된다. 순수한 생명의 숨결이 되는가 하면, 목마름이기도 하고, 갈증을 해소해 주는 생명수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삶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고 우리의 마음속에 진실된 마음을 되돌아보라고 당부한다. 그 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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