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연대, 불공고개 진혼제
지난 7월 위령비 제막식
78세 딸, "사망 신고 소원"
기록은 '공소기각', 행방 묘연

10월 31일 광주시 불공고개 인근에서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와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들이 ‘4·3항쟁 제77주년 광주형무소 수형 희생자 진혼제’를 봉행하고 있다. 고기욱 기자
10월 31일 광주시 불공고개 인근에서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와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들이 ‘4·3항쟁 제77주년 광주형무소 수형 희생자 진혼제’를 봉행하고 있다. 고기욱 기자

“아버지 사망 신고만 해드리면 저는 한이 없습니다”

10월 31일 광주광역시 북구 동림동 불공고개. 77년 전 스러져간 영혼들을 부르는 구슬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대표 양동윤, 이하 4·3도민연대)와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들은 이날 ‘4·3항쟁 제77주년 광주형무소 수형 희생자 진혼제’를 봉행했다. 제주에서 가져온 제수가 차려진 제단 위로 희생자들의 이름이 불렸다.

이들이 머나먼 광주 땅에서 제를 올리는 이유는 이곳이 제주4·3의 비극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4·3 발발 직후 제주도민들이 처음으로 수감된 육지 형무소가 바로 광주형무소였다. 1948년 5월 박진경 연대장의 강경 탄압으로 무차별 검거된 도민들은, 미군정청의 재판 이관 조치에 따라 광주로 이송돼 수감됐다. 

하지만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헌병사령관 송요찬은 죄수 및 보도연맹 관계자 등을 즉결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에 따라 당시 광주헌병대장 홍순봉(전 제주도 경찰청장)의 주도하에 재소자 학살이 자행됐다.

불공고개에서 1000여명, 장구봉에서 1000여명 등 5곳의 학살지에서 수천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4·3도민연대는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일정으로 77년 전 희생이 발생한 현장들을 방문했다.

특히 이번 순례는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들도 동행했다.

고 오용주씨(당시 27세)의 딸 오애옥씨(78)도 그중 한 명이다. 서귀포시 중문면 상예리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

77년이 지났지만, 오씨는 아직 아버지의 사망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아버지가 1948년 12월 23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공소기각’ 선고를 받은 기록을 확인했다. 아버지가 광주에 계실 것이라 믿고 이번 순례에 참여한 것이다.

오씨는 “아이들 4남매를 다 키우고 나서야 4·3을 쫓아다니고 있다”며 “마지막으로 아버지 사망신고만 해드리면 한이 없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 김승림씨(당시 32세)의 아들 김석현씨는 “나중에 광주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시신을 수습하라는 우편물이 왔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밥 먹을 형편도 안 되던 시절,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두고 차마 올라가실 수 없었다”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광주지방법원 판결문 목록에서 확인되는 4·3 수감자는 179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140여명은 한국전쟁 직후 불공고개 등에서 총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족들의 절박함은 2019년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합장묘에서 261구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실낱같은 희망으로 이어졌다.

당시 광주5·18 희생자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4·3 희생자인 고 양천종씨의 유해가 76년 만에 확인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고 양천종씨는 ‘공소기각’ 판결을 받거나 복역 중 옥사한 것으로 기록된 16명 중 한 명이었다. 고 오용주씨를 포함한 이 16명의 유해는 당시 합장묘에 묻혔을 개연성이 매우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애옥씨 역시 유해 확인을 위해 7년 전 이미 채혈을 마친 상태다.

이번 순례지가 된 불공고개, 장구봉, 도동고개는 지난 6월 광주 북구가 위령비를 설치한 곳이기도 하다.  광주 자치구 최초로 관련 조례를 제정해 추진한 사업으로, 지난 7월 열린 위령제에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도 참석했다.

4·3도민연대는 진혼제에 이어 장구봉, 도동고개, 옛 광주형무소 터, 광주지방법원·검찰청 옛터 등을 순례하며 77년 전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고기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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