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순열 동화 「별빛 가루가 된 안녕」
가순열 동화 작가가 신작 「별빛 가루가 된 안녕」을 펴냈다. 이 책은 이중섭 화가의 삶과 가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예술과 인간의 기억이 어떻게 서로를 비추며 존재를 회복하는지를 탐구한 철학적 동화이다. 동화의 외피 속에서 예술론과 존재론이 조용하게 겹쳐지는 작품으로, 한국 근현대 예술사와 문학을 잇는 독특한 감성을 보여준다.
작품은 제주 서귀포에서 펼쳐졌던 이중섭의 삶을 환상적 서사로 다시 풀어낸다. 화가의 비극과 그리움, 가족을 향한 마음이 편지와 그림의 형식으로 재해석되며, 잃어버린 존재들이 다시 말을 건네는 장면이 이어진다. 가순열은 상실된 사랑의 그림자를 문학의 언어로 되살리고, 예술적 상상력으로 기억의 서사를 확장한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단순한 감정의 회복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예술과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존재를 구원하는지 탐구하며, 동화가 철학적 문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억'은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행위가 아니라 지금의 존재를 규정하는 힘이며, 그 힘이 예술의 언어와 만나 새로운 감정의 층위를 만든다는 메시지가 뚜렷하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지금이 너무 소중해요"라는 문장은, 예술이 시간을 넘어 인간을 회복시키는 가장 순수한 순간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중섭의 그림을 현실의 재현이 아닌 '존재의 증언'으로 바라본다. 덕성 높은 정물, 황소, 어린아이의 얼굴 등 이중섭 회화에서 익숙한 이미지들이 동화 속 공간에서 다시 태어나며, 그림과 글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진다. 가순열은 "그림은 감정이 아니라 윤리적 행위"라고 말하며, 예술이 인간의 마음을 다시 서늘하게 깨우는 과정에 주목한다. 이 작품이 동화이면서도 본격 예술서처럼 읽히는 이유다.
이야기는 이중섭 가족이 제주에서 머물렀던 시간과 그의 삶을 뒤따른 비극적 여정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서사는 현실의 고통에만 갇히지 않고, 초자연적 상상력으로 열린 세계를 펼쳐 보인다. 별빛 가루처럼 흩어진 존재들은 동화 속에서 다시 만나고, '구원'이라는 오래된 질문이 조용한 문장으로 되돌아온다. 그림과 문학, 현실과 환상이 만나는 경계에서 태어난 이 책은 동화의 미학적 지평을 넓힌 작품이다.
예술이 인간을 다시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지 묻는 이 책은, 동화라는 장르를 넘어 기억과 예술의 본질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제주에서 다시 만나는 이중섭의 그림자와 가족의 마음은 독자에게 오랫동안 남을 여운을 전한다. 펴낸곳 청새롬이. 1만3000원.
제주전통음식에 담긴 제주의 말과 삶
김성 시인 신작 시집 「오막오막」
제주의 사계절을 차분한 시어로 담아온 김성 시인이 제주 전통음식을 레시피처럼 풀어낸 신작 시집 「오막오막」을 선보였다. 한국루시선 51번째 시집으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시인이 삶의 방식과 기억을 '제주어·제주의 밥상·섬의 정서'라는 세 축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37편의 시가 실린 시집은 전복, 고사리, 자리돔 같은 재료에서 출발해 제주인의 일상과 마음을 포근하게 끌어낸다. 음식의 향과 손길, 잔칫날의 기억들이 시적 상상력으로 변주되며 공동체의 시간이 스며 있다.
김성 시인은 이번 시집을 '제주전통음식 레시피 제주어 시집'이라 소개한다. 전통음식을 소재로 엄마의 밥에서 느꼈던 위로와 행복을 전한다. 책의 말미에는 두 편의 단편 동화가 함께 실려 있다. 시인의 상상력은 음식에서 동화로 이어지며, 따뜻한 제주 생활문화를 어린 독자와 성인 독자 모두에게 전한다. 한그루. 1만원.
21세기 생존 전략, 클라우제비츠를 다시 읽는 이유
류제승 「전쟁을 알아야 평화를 이룬다」
AI가 국가 안보 환경을 바꾸고 전쟁의 조건을 흔드는 시대,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원장이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핵심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전쟁을 알아야 평화를 이룬다」를 펴냈다. 익숙한 고전의 명제를 21세기 전략 문법으로 재구성하며 '군사 전문 직업주의'가 왜 오늘의 한국에 절실한지 짚어낸 책이다.
책은 "전쟁을 알아야 평화를 이룬다"는 클라우제비츠의 오래된 명제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인공지능이 판단을 대신하려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도덕성과 책임,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전쟁의 본질을 규정한 정신적 요인, 불확실성 속 판단, 그리고 '전쟁을 연구해야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고전의 통찰을 현실에 맞게 재구성했다.
저자는 40여년 군 생활에서 얻은 실전 경험과 외교·정책 현장에서의 축적된 판단을 바탕으로 군사 전문 직업주의의 중요성을 재차 짚는다. 강한 군대는 단순히 장비나 병력 규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장교단의 전문성과 책임 윤리, 교육체계의 일관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전쟁과 평화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일수록 전문성·직업성·도덕성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은 또 동북아 안보 지형, 기술 혁신, 미·중 경쟁 등 오늘의 국제정세를 고전적 관점과 연결해 분석한다. 저자는 "평화를 지킬 힘은 우연이 아닌 준비에서 나온다"고 말하며, 전쟁 연구가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폭력을 제어하기 위한 이성의 훈련임을 강조한다.
전쟁을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위한 전략적 사유를 요청하는 책이다. 예측 불가성이 일상이 된 시대, 국가와 시민이 어떤 전략적 감각을 갖추어야 하는지 묻는다. 백년 넘게 읽혀온 「전쟁론」의 메시지를 오늘의 언어로 옮겨온 이 책은 우리가 어떤 전략 문해력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김영사. 2만2000원.
제주 어린이에게 다시 건네는 섬의 전설
김도경 동화 「마라도 할망당 애기엽게」
제주의 설화와 섬의 정서를 바탕으로 동화를 써온 김도경 작가가 신작 「마라도 할망당 애기엽게」를 펴냈다. 제주 최남단 마라도의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어린이 독자들이 제주어와 제주 신화, 섬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된 판타지 중편동화다.
작품은 작가의 전작 「용왕황제국 홍보대사」에 이어 마라도의 환경과 삶을 배경으로 삼는다. 이번 동화에서 주인공 아이들은 섬의 비밀을 간직한 '애기엽게'와 만나 모험을 떠나며, 슬프고 비극적이었던 옛 설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바라본다. 흔히 '할망당'이라 불리는 제주 신앙의 세계가 아이들의 상상력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다.
글과 그림은 각각 김도경 작가와 조창우 화가가 맡았다. 조화로운 색감과 생동감 있는 장면 묘사는 이야기에 따뜻한 제주 풍경을 더하며,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설화의 세계로 빠져들게 돕는다.
작가는 "창작자로서 색다른 시선으로 마라도를 표현하고 싶었다"며 "제주의 말과 음식, 삶의 방식이 담긴 이야기가 어린 독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특히 이 동화는 제주어의 말맛과 섬의 풍경, 마라도가 지닌 고유한 정서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김도경 작가는 "독자들이 마라도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소중한 만남을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품었으면 한다"고 전한다.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지는 '기다림'과 '돌아옴'의 정서는 할망당 설화가 지닌 근원적 감정과도 맞닿아 있다.
김도경 작가는 2010년 문예운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탐라문화제 전국문학작품공모전 동화 부문 수상 이후 꾸준히 제주를 배경으로 한 동화를 발표해 왔으며, 「용왕황제국 홍보대사」로 제주유입아동문학 대상, 「할미어의 숨비소리를 찾아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지원작에 선정된 바 있다.
시집과 그림책, 동화 등 여러 장르에서 활동하며 제주어와 제주 문화를 토대로 한 작품 세계를 확장해 오고 있다.
「마라도 할망당 애기엽게」는 제주 신화를 일상 속 이야기로 다시 불러낸 작품이다. 제주 어린이는 물론 섬의 전설을 새롭게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따뜻한 가을 선물이 될 것이다. 한그루. 1만2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