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니 성의 자유 선택제니 해서 호적제도와 더 넓게는 친족제도 전반에 대한 갑론을박이 시끄럽다. 우리 민법이 그동안 수차의 개정을 통해 부인과 딸들에 대한 재산상속상의 불평등을 제거하고 여자도 호주가 될 수 있게 하는 등 많은 변화를 해 왔는데, 이제는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 같다. 예전에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려는 극단의 선택을 할 때 자식에게 한 말이 “호적을 파 가라”는 말이었다. 그 자식과의 같은 호적에 있을 수 없다는 즉, 자식에게 가족구성원으로서의 포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부모 자식 관계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호적을 낱낱이 분해해서 1인1호적 제도 쪽으로 가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형국이니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우리 민법은 호주와 가족으로 구성되는 일단의 혈연공동체를 가(家)라고 하여 이를 기초로 신분질서를 세우고 있는데 이를 기재하는 장부가 곧 호적이다. 호적은 시, 읍, 면에 두며(이를 본적이라 한다) 실제로 그곳에 거주하는 여부나 가족들이 모두 한집에 살고 있느냐 여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따라서 거주를 중점으로 하여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끼리 세대를 이루어 세대주와 그 동거인으로 구성되는 주민등록부와는 전혀 다르다. 호적에는 호주를 중심으로 그 배우자, 혈족(피를 나눈 존·비속), 그 혈족의 배우자(예컨대 며느리) 등 등재될 수 있는 자가 법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 아무나 호적에 오를 수가 없다. 그러나 주민등록부에는 세대주와 혈연관계나 인척관계가 없더라도 누구나 오를 수가 있다.

호적에 등재되는 원인은 출생, 혼인, 입양, 인지가 주된 것이다. 출생신고 잘못으로 성이나 본, 생년월일, 성명이 잘못 기재되거나 이름을 바꾸고 싶은 경우에는 법원으로부터 호적 정정허가를 얻어 고칠 수 있다. 남녀의 성별도 마찬가지로서 최근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허가가 화제를 낳고 있다. 실제로 혼인을 하지 않았거나 사기 등으로 혼인신고를 한 경우에는 그 상대방을 피고로 삼아 혼인 무효나 혼인 취소의 소를 제기하여야 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죽은 사람과의 혼인신고는 허용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죽은 사람과의 사이에 자식이 있는 경우 그 아버지의 호적에 자식을 입적하고 그 부모의 표시란에 어머니를 표시할 수 있으나 그 어머니를 죽은 사람의 처로 등재할 수는 없다.(한국전쟁 직후 한때 특별법으로 한시적 예외가 있었다)
사실혼관계가 성립하여 외형상 완전한 부부이면서도 상대방의 비협조로 혼인신고만을 하지 못할 때는 일방이 사실혼관계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여 승소하면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다. 호적상 부인이 있는 사람이 그 부인이 아닌 여자와의 사이에 자식을 낳을 경우 그 자식을 부인의 자식인 것처럼 출생신고를 함으로써 호적상 모가 잘못 표시될 때에는 그 호적상 어머니를 상대로 친생자관계 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여 승소하면 어머니를 고칠 수가 있다. 호적상 어머니가 이미 사망한 때는 그 사망을 안 날부터 1년 내에 검사를 상대로 친생자관계 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여 그 호적상 부를 부가 아닌 것으로 고칠 수가 있으나 생부의 호적에 입적하거나 부의 표시란에 생부를 지재하기 위해서는 생부를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해야만 한다.

예전에는 죽은 사람을 위하여 하는 사후양자, 사위를 양자로 하는 서양자 제도가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없어졌다. 양자가 될 자가 연장자거나 존속만 아니면 성이 다르거나 다른 가(家)의 호주라도 양자가 되는 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나저나 촌수조차 셀 줄 모르고 그 호칭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오늘날에는 가족법은 법조인에게도 참 어려운 법률이다.

<양경승·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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