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진료에서 잠시 벗어나서 바라보는 남쪽 한라산의 풍경은 참으로 여유로운 가을의 모습입니다. 어지러운 세상 이야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형형색색 가을 단풍을 뽐내는 모습은 일탈을 꿈꾸는 현대인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인간이 사회를 떠나 지낼 수는 없지만 평상시와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꾀하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을 좀더 활기차게 해보려는 노력의 단적인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집의 어린자녀들과의 관계는 요즘 어떠세요? 부모님은 바깥일 하시느라 바쁘고 자녀들은 학교에 학원에 학습지에 채이며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고 있지는 않나요?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웃으면서 저녁식사를 해본 기억이 새롭나요? 그렇다면 이제는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본인이 치과와 관련되어 있으니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치실’을 아시나요?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여배우가 남자친구와의 데이트에 앞서 큰 거울 앞에서 치실을 쓰는 모습이 우리에겐 참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이제야 두 돌 갓 지났을 정도의 해맑은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치과에 오는 게 현재 우리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아이들과의 교감에 있어 스킨십이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서 엄마가 무릎에 아이를 눕히고 치실로 치아사이를 닦아주세요(오랜만에 아빠가 해주는 건 더욱 효과 만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칫솔에 물만 묻힌 후 무릎에 누운 아이의 치아를 닦아주세요. 이럴 때 아이는 부모의 체온을 느끼고 치과에 오지 않아도 아이의 치아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아빠가 아이를 모두 몰아서 화장실로 갑니다. 아이의 칫솔질은 서툴지만 엄마, 아빠와 같이 거품을 내며 칫솔질하는 모습을 거울로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에는 저절로 웃음이 피어납니다. 이보다 더 즐거운 놀이는 아마 없겠죠? 이렇게 하는 게 어렵다고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아이들은 부모님을 그대로 따라하는 흉내쟁이입니다. 어릴 적(아마도 네발로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아이의 장난감 상자 안에 유아용 칫솔을 10여개 그냥 두었더니 부모가 칫솔질 할 때 어느새 그 아이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 칫솔질을 옆에서 하고 있어 그 아이는 영재가 아닐까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영재가 될 능력이 있습니다.

매일 해야 하는 지루한 일상도 이렇게 부모님과 함께 조금만 변화를 주면 훌륭한 교습법이 탄생하고 그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잠재적인 치과질환으로 생기는 문제도 미연에 예방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해보시죠.

<양순봉·치과의사·제민일보의료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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